역사학회도 잇달아 교과서 집필거부
최대규모 '한국역사연구회' 선언 … 사립대 이어 국립대 교수들도 동참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거부 선언이 개별 대학에서 학회로, 사립대 교수에서 국립대 교수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교과서 발간에 노·장·청을 고루 참여시키겠다는 정부 구상이 집필진 구성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6일 오전 회원 수만 770여 명에 달하는 국내 역사분야 최대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가 집필거부 선언을 했다.
정용욱 한국역사학회 회장(서울대 국사학과)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의사를 단순히 선언적 차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관련된 일체의 행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른 역사관련 학회·단체들과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정화는 비단 교과서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는 심각한 문제"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국정화고시를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15일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근현대사학회'가 성명을 내고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역사를 거슬러 가는 행위"라며 "학회 모든 회원은 어떤 형태든 단일 교과서 집필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한국근현대사학회에는 독립운동사, 경제사, 정치사 등 500여명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다.
학계에서는 한국근현대사학회를 시작으로 역사관련, 특히 근현대사관련 학회 전체로 집필거부 선언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공개적으로 국정화를 지지하는 역사관련 학회는 2011년 만들어진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 특히 논란의 핵심인 근현대사분야 전공 학자들의 집필거부 선언으로 국정교과서 개발·편찬 업무를 맡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집필진을 구성하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학사회의 집필거부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전남대, 부산대, 충북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중앙대, 충북대, 단국대 소속 역사관련 교수들도 15일 각각 성명을 내고 '국정 교과서에 관련된 모든 절차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한국교원대, 연세대, 경희대, 고려대 등의 역사관련 교수들도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전남대 사학과ㆍ역사교육과ㆍ문화인류고고학과ㆍ문화전문대학원(역사) 교수 19명은 성명에서 "정부ㆍ여당이 국론을 분열시키면서까지 비정상적으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의도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남북분단을 고착시키는데 있다"며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행위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학자적 양심과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충정에서 다시 한번 정부ㆍ여당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향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된 집필ㆍ제작 등 일련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산대 역사전공 교수 24명 전원도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 집필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다"며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자주적으로 역사 교과서를 쓸 때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것이 헌법 정신이다"고 덧붙였다.
충북대 역사 관련 교수 13명도 "조선왕조실록의 기초가 되었던 사관들의 사초는 왕이라고 해도 수정을 요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초의 열람을 요구하는 경우에 사관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며 "이는 권력자의 손에 역사서술이 농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현들의 신념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역사교과서가 중요한 이유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지침이 되기 때문"이라며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후세에게 획일적으로 재단된 역사적 가치 기준을 물려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역사학 관련 교수 9명은 성명을 내고 "고대로부터 역사가들이 강조한 역사 서술의 자세는 사실과 근거가 있으면 서술하고 해석하지만, 만들어 짓거나 창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역사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학문이 아니다. 사실이 있으면 쓰고, 지도자의 공과는 엄정하게 평가한다"며 "이것이 사관의 정신이고,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당하면서 세운 기초"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서울대·서강대 사학과 교수들은 국정화 대응 방안을 논의해 다음주 초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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