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간 '예술검열' 구독을 거부합니다

2015-12-16 10:50:41 게재
"한달에 한번." 월간지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예술검열에 대한 이야기다. 박근혜정부 집권 이후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만 대충 스크랩해도 예술에 대한 검열 이 한달에 한번 꼴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예술검열은 2013년 9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 과정에서 논란이 된 것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기념 전시회에서 임옥상 작가의 '하나됨을 위하여'에 대한 청와대 검열 논란', '광주비엔날레 관련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전시유보 결정',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을 배포한 이 하 작가 연행', '영화 다이빙벨 관련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전태일 청소년문학상과 근로자문화예술제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상 수여 거부', '국가인권위원회 기관지 인권에서 소설 소수의견의 작가 손아람 기고 배제' 등 꾸준하게 반복되었다.

'문화융성'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검열융성'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박근형 연출가가 2013년에 발표한 연극 '개구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대상에서 배제되고, 이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이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웹문서 조작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검열을 했다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팝업씨어터의 '이 아이' 공연을 방해했고, 국립국악원은 '소월산천' 공연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맡은 부분의 배제를 요구했다가 문화예술계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검열이 공연예술계에만 집중되어 장르적인 균형이라도 맞추고 싶었는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첫 외국인 관장으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Bartomeu Mari Ribas)를 임명했다.

그는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관장 재직 당시 '정치 검열' 논란에 휩싸였던 인사다. 이번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선임 과정에서 국내 미술계 523명의 반대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늘 그렇듯이 '침묵과 강행'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문화융성'을 약속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검열융성'의 시대다. 박근혜정부의 검열융성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하여 문화행정, 예술행정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망각한 채 오히려 예술검열에 능동적으로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예술검열과 예술지원을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박근혜정부는 표현물에 대한 통제만이 아니라 공공지원의 통제를 통해서 예술검열의 사회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과거의 예술검열은 영상물등급위원회를 비롯하여 표현물을 다루는 심의기관으로 제한되어 진행되었다.

반면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예술검열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립국악원, 한국공연예술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등 예술창작 지원기관들의 행정 시스템과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술검열이 창작 환경을 비롯한 예술가의 삶 전반에 대한 통제 과정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정치적이면 안된다"는 말이 가장 정치적

예술검열의 주체들은 늘 "예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혹은 "예술은 그 자체로만 존재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사실 "예술은 정치적이면 안된다"는 말이 가장 정치적이다. 예술검열의 시대에 예술가들에게 "한국의 예술가들이여, 작업실로 돌아가라"는 말은 또 다른 검열장치에 불과하다.

검열융성의 시대에서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은 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부역자들에 맞서 더욱 불온하고 도발적이며 저항적인 삶의 모습으로서 예술을 지속하는 것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여, 모든 검열을 거부하라."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