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별기획 - 국책연구기관장에게 듣는다│강현수 국토연구원장
"주거는 생활SOC, 고시원 없애는데 예산 써야"
주택건설, 도로·철도보다 일자리 더 많아
3기 신도시는 소유 아닌 거주 개념으로
5차 국토개발계획에서 남북협력 방향 제시
"주거약자를 위한 예산투입을 확대하면 열악한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분들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착한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주거문제 해결과 주거비 경감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3기 신도시를 "단순히 주택공급용이 아니라 주택소유 형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청년실업과 저출산 등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촉매제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기존 분양방식 대신 평생임대나 환매조건부 아파트를 공급해 소유가 아닌 거주 개념의 신도시로 만들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공유경제와 스마트 도시 등 사회혁신 실험을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강 원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 행정학 박사를 마치고 중부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로 지내왔다. 2013년부터 충남연구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7월 국토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강 원장과의 인터뷰는 설 연휴 전인 지난달 31일 내일신문에서 진행됐다.
■ 올해 부동산가격은 어떻게 전망하나.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에서 올해 전국적으로는 0.5%, 지방은 1.1% 하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수도권은 0.1% 내에서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전망을 발표한 후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부동산 가격 안정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수요 관리에서 찾아야 한다. 수요는 투자수요와 실수요로 구분할 수 있다. 투자수요가 주택 소유를 통해 기대 수익을 얻고자 하는 수요라면, 실수요는 더 비싼 주거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원하는 지역의 주택에 거주하고자 하는 수요다. 투자수요는 억제하고 실수요는 분산해야 한다.
투자수요를 줄이기 위해선 공시지가 현실화, 보유세 강화, 개발이익 환수 등을 통해 주택 소유에 따른 기대수익을 낮춰야 한다. 실수요를 분산하기 위해선 지역간 균형발전이 필요하다. 강남에 버금가는 수준의 입지와 주거환경을 갖춘 곳이 전국에 여러 곳 있다면 서울의 주택수요가 분산돼 가격 상승 압력이 낮아질 것이다.
이같은 수요 관리 정책과는 별도로 이미 너무 높은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 계층이나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주거급여나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정부의 주거복지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일관돼야 한다. 부동산 정책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거시경제정책의 보조수단으로 쓰이다보니 정책이 자주 변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받쳐주겠지 하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형성됐다. 여야가 합의나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 앞으로 인구감소 시대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단독주택 공시가격 인상으로 보유세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선진국에 비해 보유세 수준은 어떤가.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보유세 수준은 확실히 낮다. 그렇다고 보유세율을 일괄적으로 높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갖고 있는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고, 또 소득대비 부동산 가격이 높다. 보유세율을 높이면 세금부담이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우선 부동산 유형에 따라 들쑥날쑥인 보유세의 형평성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재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은 상대적으로 가격 대비 보유세를 적게 낸다. 또 비거주용 부동산인 상가의 보유세는 굉장히 낮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단독주택의 공시지가를 올린 건 잘한 정책이라고 본다.
■ 정부가 3기 신도시를 개발하기로 했는데
그동안 신도시 건설은 서울의 인구분산, 수도권 주택공급, 집값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그만큼 서울과의 접근성, 교통인프라, 자족성 확보가 성공 요건이었다. 3기 신도시는 이에 더해 주택 소유형태를 바꾸는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현재는 모두 분양방식인데 평생 분양을 받지 않고 계속 임대해서 살 수 있도록 한다든가, 소유하더라도 팔 때는 LH공사나 지방정부에 되팔도록 해 시세차익이 없는 주택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소유와 투기가 아닌 거주와 정주 개념의 '경제민주화' 신도시다.
한꺼번에 도입하기 어려우면 신도시 일부구역이라도 '사회혁신 실험 아파트'로 만들어 청년이나 벤처기업가들에게 거주개념의 아파트를 공급하고, 그 속에서 일자리나 청년 실업, 출산율 저하 등 우리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았으면 한다. 가령 신도시에는 기존 택시업체들이 없으니 택시카풀과 같은 공유경제를 실험해본다든가, 스마트 도시 실험 등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겠나. 3기 신도시를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촉매제로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 예비타당성조사(예타)면제 사업 선정을 두고 논란이 많은데
비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인구 수가 적고 인프라가 취약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이 늦어지고 그래서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역의 성장발판 마련을 위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균형발전지표를 추가한다든지, 비수도권에 가산점을 준다든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기준을 달리해 제도화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타 면제 사업 중 주택 관련 사업은 많지 않은데 앞으로 주거약자를 위한 대책에도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주거약자를 위한 예산투입을 확대하면 열악한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분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도로나 철도 등 토목 보다 주택건설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나온다. 타일, 배관에서부터 이삿짐센터까지 관련 산업도 크다.
정부의 생활밀착형SOC(사회간접자본)사업도 교육과 문화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주거야말로 중요한 생활SOC다. 앞으로 여러 가지 '착한 건설'이 필요한데 주거문제 해결 쪽에 중점을 뒀으면 한다.
■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기존에는 연간 15곳, 1500억원 규모였는데 문재인정부 출범 후 연간 100여곳에 정부지원만 2조원 규모로 확대됐다. 2017~2018년 167곳이 선정돼 사업이 진행중이다. 다만 집행률이 기대에 못 미친다. 도시재생뉴딜 사업이 공모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간 사업 수와 예산을 정해놓고 신청을 받아 집행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그럴싸하게 사업계획을 만들어 신청한다. 그러니 막상 사업 추진단계에서 주체가 불명확하다든가, 일부 주민들이 반대한다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1년 단위의 단년도 신청주의 예산시스템은 중장기적인 도시재생사업에 적합하지 않다. 공모방식보다는 도시재생기금 같은 것을 설치해 사업성이 충분히 검증됐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 제5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는 남북협력부문도 포함되나.
남북협력을 위해선 한반도 전체의 인프라망이나 생태축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가령 남한에서 북한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갈 때 한반도 전체 교통구조는 어떤 식으로 해야할 지에 대한 방향성 등을 이번 5차 계획에서 다루려 한다. 북한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남북이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교류 신청을 할 계획이다.
■ 올해 중점 연구방향은
5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1순위이고, 2순위가 주거비 경감이다. 주택가격이 안정됐지만 워낙 집값이 비싸 서민주거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저소득층은 주거비 비중이 높다. 아직 고시원, 쪽방 등 비주택 거주자들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만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주거약자들의 소득에서 주거비 비중을 낮추는 것도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내용이다. 서민과 청년들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거나 고시원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 저소득층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주거급여를 실질적인 주거복지를 높일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 광열비 지원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