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만세운동 주도한 이만집

2019-03-04 10:50:00 게재

99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이만집은 1875년 경북 월성군 강동면 호명리 출생이다. 한학을 공부하다 계성학교 창설 당시 한문교사로 부임, 계성학교 교장이자 남성정교회 담임목사였던 아담스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입문했다. 1912년까지 계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브루언 선교사를 도와 경북전역의 순회조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12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후 1917년 6월 경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남산정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이만집은 학교 교사로 출발해 조사, 장로, 목사를 거친 복음전도자로 청년과 교육 문제에 관심이 높았다.

대구 독립만세운동을 총괄 지휘한 이만집은 1919년 3월 8일 오후 2시 서문 밖 시장터에서 "지금이야말로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 때다. 각자가 독립을 성취할 수 있도록 만세를 부르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후 만세운동은 대구와 경북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날 체포된 이만집은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만 2년간 복역했다. 출옥후 일경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이만집은 목회에 전념했다.

정부는 1999년 이만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2005년에는 경북노회에서도 그를 복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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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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