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변호사의 가족법 이야기 (23)
전업주부 '황혼이혼'서 정당한 몫 주장 가능
올해로 65세가 되는 A씨는 얼마 전 금지옥엽으로 키운 3남매 중 막내 딸의 결혼식을 지켜보며 문득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40년 전, 먼 친척의 소개로 3살 연상의 남편 B씨를 만나 결혼한 A씨. 결혼생활동안 수차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기도 했고, 사업실패 후 알코올 의존증에 경제활동이 힘들어진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바깥일과 집안일까지 모두 책임져야했던 시기도 있었다. 한때 이혼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 자녀들 때문에 버텨온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부터는 아예 남편과 별거하며 남처럼 지내고 있는 상황. A씨는 자녀들이 모두 자라 자신의 곁을 떠난 지금이라면 더 이상 남편 B씨와의 부부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황혼이혼'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황혼이혼은 인생의 황혼기라 불리는 50대 이상의 부부가 이혼을 하는 경우나, 자녀들을 다 키워 독립시킨 후에 하는 이혼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보다 일반적으로 혼인관계를 20년 이상 유지해오던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올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이혼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건수 10만 8700건 중 '결혼생활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33.5%로 가장 많았고, '결혼생활 4년 이하인 부부'의 이혼율이 21.4%로 그 뒤를 이었다.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확실히 앞지르게 된 것이다.
과거 '황혼이혼'은 여러모로 쉽게 결정될 수 있는 이혼이 아니었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혹은 자식들 때문에 '이 나이에 무슨', '지금까지도 잘 참고 살아왔는데 조금 만 더 버티면'식의 자기 위로와 희생으로 배우자 중 누구 한 명이 사망하는 순간까지 참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참다 못 해 법원에 찾아가보아도 부부의 나이와 그에 비례하는 긴 혼인기간은 이혼을 허락받을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황혼이혼'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이었다. 주로 '가사노동'을 담당하던 여성들은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이 없어 부부공동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기 어려워 평생 남편을 도와 함께 만들어온 공동재산에 대해 정당한 몫을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경제활동이 소극적이었던 분위기에서 평생을 '전업주부'로 지내온 여성에게 이미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50대가 지나서 하는 이혼은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이혼을 권하지는 않지만 흠이 되는 것도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 나를 무조건 희생하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주로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머물던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히는 일도 줄어들었다.
'전업주부'인 경우에도 최근 기여도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변하면서, 소득활동을 통한 직접적인 기여가 없다고 하더라도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등 '가사노동'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배우자를 도왔다면 내 몫의 재산을 분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위 사례의 A씨도 나이와 상관없이, 남편 B씨와 협의로 이혼하거나 법원에 재판상 이혼을 신청할 수 있다. 현재 A씨와 남편 B씨가 별거 중이며 과거에도 둘 사이에 실질적으로 부부라 여길 만한 관계가 없고, B씨의 외도 등 남편으로써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점들이 인정된다면 A씨의 B씨에 대한 이혼청구는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또 A씨가 전업주부로서 재산형성에 기여한 점, 이후 경제활동으로 가정경제를 책임져 온 점 등 충분히 부부공동재산형성에 기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A씨는 재산분할에 자신의 정당한 몫을 주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