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돋보기 졸보기 |'재난지원금 13조원' 유통지형 바꿀까

편의점 '수혜' 대형마트 '피해' 백화점 '중립'

2020-05-15 10:26:48 게재

석달 시한 사용처 제한에 식료품 구입, 외식비로

명품까지 팔려는 편의점, 할인 또 할인 대형마트

긴급 재난지원금이 유통업계를 뒤흔들 판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11일부터 모든 가구에 지급하기 시작한 재난지원금(4인 가구기준 100만원)은 어림잡아 1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8월말까지 석달동안 쓸 수 있다. 우리나라 순수 소매 판매액은 연간 370조원대. 전체 소비의 14%가 이 기간 이뤄지는 셈이다. 유통업계에 미칠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사용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유통업종마다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다르다. 편의점처럼 재난지원금 덕에 장사가 더 잘 될 곳이 있는 반면, 대형마트처럼 '손님이탈'로 파리만 날릴 곳도 있기 때문이다. 현상유지에 '부스러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는 곳도 있다. 여윳돈이 생긴 중산층 유입을 기대하는 백화점, 대형가전판매점 등이 그렇다. 코로나사태가 길어지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통업계엔 낭보지만 한편에선 '속쓰린 소식'이기도 하다. 사상 첫 재난지원금이 유통가를 쥐락펴락하는 모양새다.

◆업태, 품목따라 희비 엇갈려 = 재난지원금 사용처는 정해져 있다. 유통 업태나 품목에 따라 '희비'가 갈릴 수 있다.

우선 백화점 대형마트 대형전자판매점 면세점 프랜차이즈직영점 등 기업형 유통과 온라인유통업체에선 재난지원금을 쓸 수 없다.

쿠팡 등 이커머스와 배달의 민족같은 배달앱도 안 된다. 유흥업종은 당연히 사용제외 대상이다. 골프장 스크린골프장 노래방 복권방도 재난지원금은 사절이다. 교통카드나 통신료도 재원지원금으론 낼 수 없다.

재난지원금이 풀려도 매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업종들이란 얘기다.

반면 오프라인 개인사업자 혹은 오프라인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선 사용 가능하다. 예컨대 전통시장 동네마트 주유소 정육점 과일가게 편의점 음식점 카페 빵집 약국 이미용실 안경점 네일샵 의류점 자전거용품점 장난감가게 서점 문방구 학원 등은 대환영이다.

또 프랜차이즈 직영점이라도 본점 소재지에선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 100% 직영점인 스탁벅스와 랄라블라(헬스엔뷰티매장)는 서울매장에선 재원지금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임대 매장에서도 쓸 수 있고 배달의 민족 앱 직접결제는 불가능하지만 대면결제는 가능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기업형 유통과 온라인 소매판매액은 연간 205조원. 석달로 나누면 51조원이다. 오프라인 소매판매액은 연간 167조원. 3개월간 41조원이다. 석달간 재난지원금이 다 쓰인다면 일시적이지만 오프라인 소매판매액이 기업형 유통·온라인 많을 수 있다. 그만큼 재원지원금 사용처들은 혜택을 본다.

◆식료품, 외식, 교육비에 영향 = 재난지원금은 주로 식료품 구입과 외식 교육비 의료비로 지출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4인 가구 월 지출액은 327만원. 이 가운데 공과금 교통비 통신료 82만원을 뺀 245만원이 유통가 등에서 소비된다. 식료품이 90만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교육비(62만원)다. 또 의료비는 월 15만원 정도 나간다. 재난지원금이 식료품 외식 교육관련 업종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의미다.

증권가는 특히 재난지원금 최대 수혜업종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을 두고 있는 편의점을 꼽고 있다.

국내 편의점 가맹비중은 98.6%. 직영 편의점은 1.4%로 미미하다. 재난지원금은 1인가구가 인당기준(1인가구 40만원, 2인가구 50만원, 3인가구 80만원, 4인가구 100만원)으로 가장 많이 받는다. 1인가구 손님이 많은 편의점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유통가는 편의점 와인, 육류, 가공식품, 담배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경우 와인 구매에 쓴 소비자가 전년 같은기간보다 777% 증가했을 정도다. 편의점들이 취급품목을 명품, 골프용품, 가전제품 등으로 넓혀나가는 이유다.

◆대형마트와 대체재 관계 = 재난지원금 가장 큰 피해(?) 업종은 대형마트다. 식료품이 가구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인데 오프라인 소상공인 사업자 대부분이 외식·도소매업 종사자다. 대형마트와 대체재 관계인 셈이다. 2019년 대형마트 연간 소매판매액은 32조원. 3개월간 13조원의 재난지원금이 대형마트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 임대매장(미용실 안경점 약국 세차장 키즈카페 사진관)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대형마트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 자릿수로 미미하다. 대형마트들은 다음주부터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돌입한다. 이탈 고객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홈쇼핑도 일부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에서 전면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데다 주 고객인 50대 이상 주부층이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전통시장 등을 동시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 역시 상당부분 소비가 오프라인으로 이전함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과 판매품목이 겹치는 식품·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쿠팡 마켓컬리 이마트몰 등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백화점과 가전전문점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위치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지만 소상공인 혹은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취급하는 품목과 겹치는 부분이 적기 때문이다. 식품과 생필품 등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해결하고 남는 여유자금으로 자기만족형 고가, 대형 상품 소비를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지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재난지원금은 한시적 기간, 한정적인 업종에서만 사용 가능해 당분간 국내 유통산업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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