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점 맞는 회계개혁 | ① 기틀마련하고 물러나는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회계투명성 높아져야 기업구조조정 타이밍 놓치지 않아"
기업들 회계개혁 완전히 수긍 못해 '계속 설득' 강조 … '비영리법인 감사공영제 도입' 개혁 과제
2018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회계개혁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고 있다. 회계개혁의 주축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고 '표준감사시간제'와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적용대상 기업이 확대된다.
회계투명성 강화라는 목표로 추진된 회계개혁은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됐고, 선두에서 개혁을 이끈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 회장은 17일 신임 회장에게 개혁의 바통을 넘겼다.
최 회장은 11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회계투명성이 높아져야 기업의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며 "회계 데이터가 정확하면 거시경제 통계도 정확해진다는 점에서 경제학적 측면과 기업관리 측면, 통계관리측면에서 회계투명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경제적 부담 이해" =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수많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실적을 좋게 보이려고 왜곡된 회계처리를 할 가능성도 있다. 회계부정이 발생하면 기업은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 사례다.
최 회장은 "회계투명성이 올라가면 1차적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기업 저평가)가 없어지니까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주할 때 피보증을 2곳 이상 서게 하는 등의 얘기는 사라질 것"이라며 "자금을 조달하기 쉽고 금융비용이 줄어드는 등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회계개혁의 실증적인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는 10년 또는 20년 이후에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세계 최초의 실험이 성공할지 해외 회계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다. 영국과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최근 몇 년간 대기업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회계부정 이슈가 이어졌고 회계법인과 기업의 유착 문제가 대두됐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감사인(회계법인 등)을 6년간 자유롭게 선택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감사인과 기업의 유착 고리를 끊고 회계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최 회장은 "감사의 질을 결정하는 2가지는 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며 "하지만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도 감사결과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기업들도 회계개혁의 방향에 대해 동의하지만 제도가 바뀌는 것에 대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한다"며 "하지만 기업과 회계사들이 서로 양보해서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아직도 (회계개혁을)완전히 수긍하거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초반에 비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며 "회계투명성이 높아졌을 때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계속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회계개혁을 통해 총요소생산성(다양한 생산요소의 효율성)이 기대했던 것보다 높아지면 회계투명성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며 "국가 잠재성장률의 패턴이 한단계 올라간다면 회계효율성의 증진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도입한 제도를 우리나라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성과를 입증한다면 그 결과는 세계 회계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전 세계 회계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결국 우리나라의 국격이 올라가는 일"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회계개혁이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이라면 최 회장은 '비영리법인에 대한 감사공영제 도입'을 향후 과제로 꼽았다. 비영리법인의 감사인을 정부에서 직접 지정해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이게 위한 제도가 감사공영제다.
◆"다음은 비영리부문 개혁" = 최 회장은 "영리부문의 회계개혁은 외부감사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틀이 갖춰졌다"며 "비영리법인의 감사공영제도는 지난해말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개정으로 물꼬가 터졌다"고 말했다. 상증세법 개정안은 공익법인에 대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와 회계감리제도 도입을 담고 있다. 공익법인이 4년간 외부감사인을 자유선임했다면 2년은 감사인을 지정받아야 하는 '4+2'의 주기적 지정제 방식이다.
2022년부터 기획재정부장관의 위탁을 받은 국세청장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게 된다. 다만 '의료법에 따른 의료법인 또는 사립학교법에 따른 학교법인,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공익법인 등'은 제외됐다.
최 회장은 "21대 국회에서는 사립학교법 등 공익법인 감사공영제와 관련된 법들이 다 개정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아파트 회계감사를 강화하기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파트 회계감사의 경우 300세대 이상 아파트에 대해 외부감사를 의무화했지만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친분이 있는 회계사들이 감사인을 맡아 제대로 된 감사를 하지 않으면서 부실 회계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감사공영제를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법개정이 필요하다.
◆"개혁 과정에서 '야당 설득' 고비" = 최 회장은 회계개혁 과정을 설명하면서 "야당(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고비였다"며 "회계감사제도를 바꾸는 일이 회계사들만을 위한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회계투명성 향상이 장기적으로 기업과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점을 의원들이 의외로 쉽게 수긍했고 나중에 적극적으로 지지해줘서 법안 통과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2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정경제부 요직을 두루 거치고 청와대 경제수석과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최 회장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맡아 회계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업계에서는 '힘있는 관료출신이 와서 이뤄낸 성과'라는 말이 무성했다.
최 회장은 "선배들 말씀이 장관을 그만두고 나오면 과장급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고 하더라. 4단계가 떨어진다는 얘기인데 나와 보니 딱 맞는 말"이라며 "회계개혁은 지위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명분과 설득력, 공익에 부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