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점 맞는 회계개혁 | ② '개혁동력 유지·약화' 갈림길
"기업 부담 덜어주면서 개혁 취지 달성 과제"
제도 완화 공방 이어져 … "개혁법 도입 때 서슬 퍼랬지만 시간 갈수록 동력 약화"
"기업들은 회계개혁의 효과가 없다는 점을 계속 부각시키면서 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서, 빠른 시일 내에 회계업계와 학계에서 효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25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는 회계개혁을 둘러싼 기업과 회계업계의 끊임없는 공방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회계개혁을 위해 2018년 11월 외부감사법을 전부 개정한 '신 외부감사법'이 마련됐고, 올해 본격적으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됐다. 금융당국이 직권으로 지정한 감사인에 의해 상장기업들이 첫 외부감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22일 금융당국이 회계개혁 과제의 시장 안착·지원을 위한 '회계개혁 간담회'를 연 것은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완화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금융당국은 감사인 지정제와 관련해 일부 기업을 직권지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표준감사시간제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 감사인선임위원회(회사 경영진의 감사인 선임 견제) 운영을 다소 완화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회계업계는 "현재 회계개혁 추진에 영향을 줄만한 임팩트 있는 방안은 없었다"며 안도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계개혁을 위한 외부감사법 개정 당시만 해도 서슬이 퍼랬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경제가 어려워지면 동력을 잃을 수 있고 한 두 번의 고비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회계개혁 틀은 갖췄지만 …' =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회계개혁의 제도적 틀을 대체로 갖췄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문제는 시행 과정에서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여부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하면서 개혁 취지를 달성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는 최근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를 발표하면서 세부 항목인 '회계·감사 실무적정성' 부문(63개국 평가)의 우리나라 순위를 전년도 61위에서 올해 46위로 평가했다. 매년 60위권에 맴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성과다. 금융당국과 회계업계는 회계개혁의 결과가 반영됐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발표된 IMD 평가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회계감사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일부 개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평가결과가)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회계개혁 성공을 위한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손 부위원장은 "올해는 주기적 지정제, 감사인 등록제 등 회계개혁의 핵심제도가 시행되는 첫 해"라며 "회계개혁 성패가 판가름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시장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회계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성과 입증 어려운 회계개혁 = 하지만 회계개혁은 시간이 지나도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부담감을 느끼는 기업들의 공격은 언제든 계속될 수 있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파트너 회계사는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기업들로부터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며 "성과와 달리 분식회계 등의 문제는 확연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회계개혁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고 그동안의 개혁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회계사는 "30년 전 외부감사를 하러 기업에 가면 '뭐하러 왔냐'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회계감사를 해도 기업들은 비자금을 조성하고 재무제표를 따로 만드는 관행으로 거짓 회계자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고 말도 안되는 일들이 점차 사라졌다"며 "회계개혁도 기업들은 실질적으로 나아지는 게 없으니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겠지만 기업의 감사환경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감사인의 역할은 10%, 기업의 역할이 90%라고 말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축구와 비교하면 감사인은 골키퍼의 역할과 같다. 골을 먹으면 골키퍼의 잘못도 있겠지만 수비와 공격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며 "능력있는 골키퍼도 페널티킥을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핵심은 기업의 변화"라고 말했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임직원을 기업이 내부회계관리자로 임명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며 "내부회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과 전문성 부족이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실효성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내부회계 담당이사·직원을 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에서 별도 등록·관리하고 이들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품질 향상' 회계법인 내부 개혁 필요 = 회계개혁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받는 회계법인들은 감사품질 향상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상장회사에 대한 외부감사는 금융당국의 심사를 통과해 '감사인등록'을 마친 회계법인들만 맡을 수 있다.
감사인등록제는 상장회사의 외부감사를 맡기 위한 등록요건으로 '소속 공인회계사를 40명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인력 조항을 비롯해 '감사품질의 효과와 일관성 확보를 위한 통합관리체계를 갖출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회계법인 내 인사와 수입·지출의 자금관리, 회계처리, 내부통제, 감사업무 수임 및 품질관리 등 경영 전반의 통합관리를 위한 체계를 갖추라는 것이다.
대형·중견 회계법인들은 통합관리체계인 일명 '원펌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대다수 회계법인은 독립채산제 방식을 운영하고 있어 감사품질관리에 충분한 노력을 쏟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회계법인 37곳을 상장회사 감사인으로 등록시켰지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다는 게 회계업계의 분석이다.
전 교수는 "감시인등록을 처음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열어줄 수 있지만 그 이후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해서 기준에 미달하는 곳은 탈락시켜야 한다"며 "회계법인들이 내부 개혁을 통해 상장법인 감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 없이 기존체제를 유지하면서 비상장회사의 감사만 할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품질의 실패가 곧 회계개혁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박 교수는 "회계법인의 지배구조와 평가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감사수행부서 또는 감사담당회계사의 평가에 있어서 감사품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도록 평가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