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소득세 2년 연기 … 대주주 기준 100억원 이상
22년 전보다 후퇴된 기준 … 조세원칙 위배·개미에게만 '과세'
가족합산 없이 본인 지분만 … 전체 '0.3%' 불과
정권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진행된 합의 뒤집어
재벌·부자감세 혜택 … 소액투자자 부담 더 커져
정부가 내년 초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과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2년간 유예한다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보유금액 100억원 이상으로 단일화하고, 가족합산 없이 본인이 가진 주식만 따지기로 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주식 양도소득세는 0.3%에 불과한 초고액 주식보유자만 납부하게 될 전망이다. 반면 일반투자자들이 주식 거래할 때 마다 내는 증권거래세는 폐지가 아닌 인하로 방향을 바꿨고, 현재 인하 계획 보다 속도가 더 늦춰졌다.
금융투자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세법 개정안은 양도세 폐지와 다름없다며, 이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 위배할 뿐만 아니라 지난 22년간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진행된 합의를 뒤집고, 더 후퇴된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시장을 활성화하고 동학개미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개정안을 뜯어보면 명백한 재벌특혜·부자감세이며, 소득세 과세 유예와 함께 증권거래세 인하폭은 줄어 소액투자자들의 부담만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가족합산 폐지, 상속·증여세 무력화 우려 = 21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22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시기가 2023년에서 2025년으로 연기된다. 국내 상장 주식의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그 용어도 '고액주주'로 바꾸기로 했다. 우선 현행 대주주를 정의하는 요건 중 코스피(1%) 코스닥(2%) 코넥스(4%) 등 지분율 요건을 삭제하고, 보유 금액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였다. 기존 대주주를 판정할 때 활용되던 '가족 합산' 방식은 폐지되고, 본인 보유 주식만 산정한다. 또 개인투자용 국채에 대한 이자소득 분리과세 신설 등으로 고소득층과 고액자산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정부가 발표한 개정안을 살펴보면 서민들보다는 부유층에 돌아가는 혜택이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나라살림연구소는 "현재도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는 극히 일부의 자산가만 납부하고 있다"며 "양도소득세 신고건수를 기준으로 볼 때, 전체 개인투자자 중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은 0.13~0.30%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족 합산' 방식은 폐지는 재벌 대주주 등의 감시 기능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족합산 방식은 취지 자체가 재벌 총수 일가의 변칙 상속이나 과도한 주식 양도소득을 방지하는 데 있었던 만큼 상속세와 증여세 무력화 우려가 크다.
◆증권거래세 인하 폭 줄어 … 개미들만 세금 더 내 = 정부는 내년부터 코스피, 코스닥 시장의 증권거래세율을 낮출 방침이다. 올해 0.23%였던 증권거래세는 내년 0.20%, 2025년 0.15%로 낮아진다. 원래 계획대로 금투세를 2023년부터 도입하면 대신 증권거래세를 내년부터 0.15%로 낮출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투세 도입을 미루면서 정부는 거래세 인하폭을 줄였다.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세운 증권거래세 폐지에서 후퇴한 안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거래세 인하폭 감소가 일반 소액투자자들의 부담을 더 키운다고 지적했다. 현재 소액투자자들은 이익을 보든 손해를 보든 무조건 거래세를 내야한다. 작년에 거둬들인 15조원의 증권거래세 중 10조원 이상이 개인투자자 비중으로 추정된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현행 세법에는 금융투자소득세를 고액 투자자에게 물리고, 증권거래세는 올해 0.23%, 내년에 0.15%로 내리려고 했는데 이를 2년간 미뤄 일반투자자는 안 내도 될 0.05%p 가량 거래세를 더 내게 됐다"며 "금투세를 내고 거래세가 폐지되면 안내도 되는 세금을 소액투자자들은 더 내야하는 셈이 됐다"고 꼬집었다.
◆전산망 개발에 난감한 금융사들 = 증권사와 은행 보험 등 금융사들은 세법개정안 통과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 난감해하고 있다.
현재 세법상으로는 내년 초부터 대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20%(3억 원 초과분은 25%)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게 되어있다. 이는 수년간의 논의를 거쳐 2020년 세법개정안에서 이미 통과됐던 내용이다. 새로운 금투세 도입으로 금융사들에게는 고객의 주식 매매 시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 원천징수 의무가 생겼고 이와 관련한 전산시스템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융사들은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개발비를 들여서 전산망 개발을 하는 중에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세법을 다시 개정하기로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리 시스템 개발을 끝냈다가 금투세 도입이 2년 유예되면 수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시스템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법 개정 또한 난항이 예상된다. 재벌특혜·부자감세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국회는 여소야대인 국면에서 정부안이 통과될지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식 양도소득세 관련 논의는 오랜 기간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과 함께 논의를 했고, 지난 2020년 12월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으로 증권사뿐만 아니라 은행, 보험사도 금투세 도입을 위해 전산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있다"며 "기왕에 전산준비를 한 만큼 내년 1월 1일에 시행되는 게 좋다"며 금투세 유예 여부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