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유럽연합의 디리스킹 전략

2023-04-13 12:00:58 게재
임종식 지경학 칼럼니스트

4월 6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의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3자 회담을 개최하는 특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50여명에 달하는 프랑스의 경제·문화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동반했다. 그 내막은 미중 간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벌어지는 지경학적 '합종연횡'의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작한 미중 간 무역전쟁은 중국과 경제적 결별을 목적으로 한 디커플링으로 발전했다. 반면 민간 경제계는 전면적 디커플링이 초래할 경제적 손실을 우려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 디커플링의 범위를 전략적 첨단기술 분야로 축소·집중하는 한편,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기술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구체적 실행방안으로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출범, 인플레이션감축법 및 반도체법 제정 등이 이어졌다.

미중 대결속 마크롱 중국 방문은 '지경학적 합종연횡' 맥락

유럽연합과 중국은 2021년 신장위구르족 인권문제로 상호제재를 주고받고 양자 간 포괄적투자협정의 비준 절차를 중단하는 등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2022년 11월 독일 숄츠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고,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금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미국의 디커플링(decoupling)보다 온건한 디리스킹(derisking)을 대중국 관계의 기본전략으로 천명함으로써 화해를 모색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중국을 포함한 공급망 체계를 유지하되 유럽연합이 규정하는 특정 대중국 리스크를 제거하는 프레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군사적 이용을 배제할 수 없거나 인권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는 고도민감기술의 대중국 거래 또는 투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고도민감기술은 첨단기술에 비해 그 범위가 좁고, 또 동맹과의 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디리스킹은 디커플링 대비 유화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을 지지하자,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에 반발해 디리스킹의 대상에 경제안보 리스크를 포함할 것임을 표명했다.

4월 6일 3자회담 후에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크"를 재천명했지만 동시에 양자 간 포괄적 투자협정의 사문화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결론적으로 디리스킹 전략은 중국을 공급망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중국과 합종하고, '고도민감기술'의 대중국 위험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적절한 수준에서 연횡하는 전형적인 지경학의 헤징전략이다.

베이징 3자회담은 디리스킹 전략을 실제 외교현장에서 시연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즉 유럽연합이 세계 질서를 이끄는 제3의 세력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마크롱은 중국과 '합종'하고, 유럽연합의 폰 데어 라이엔은 미국과 '연횡'하는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수세적 대응에서 벗어나 한국만의 고유 전략 개발해야

미국의 기술 디커플링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적절한가? 현재의 수세적 대응에서 벗어나 디리스킹 전략을 모델로 한국만의 고유 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을 포함한 공급망의 기본체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군사적 민감 기술의 투자를 제한하는 등 미국의 디커플링 정책 중 수용 불가피한 요소를 선별하여 반영하는 '중국 포함, 위험 완화' 프레임을 제안한다. 이때 위험은 중국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미국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는 양면적 인식이 필요하다.

리스크 '제거'가 아니라 위험 '완화'인 것은 유럽연합에 비해 중국과 미국의 지경학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고 내수 기반이 취약한 한국의 상황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다. 합종과 연횡을 결합한 헤징을 통해 위험을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