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반복되는 미 정부 디폴트 위기

2023-05-19 10:55:21 게재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

다음달 초 사상 초유의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내몰린 미국정부와 의회는 부채한도 조정 논의를 이어갔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다만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 일정을 단축해 21일(현지시간) 귀국하기로 했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도 CNBC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디폴트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조정의 여지는 남겼다.

바이든과 미 의회 지도부 디폴트 위기감에 협상안 접근

이른바 디폴트 시점인 X-데이트(date)를 6월 1일로 못 박은 미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은 부채한도 상향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미 정부가 디폴트를 맞을 경우 미국과 세계경제는 큰 재앙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연방정부 소속 공무원들의 급여 지급은 중단되고 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 운영 역시 마비될 뿐 아니라 세계 금융체계를 지탱하는 근간인 미 국채시장이 무너져 세계 금융시장은 대공황에 준하는 심각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미 정부가 의회에 부채한도 상향 요구를 하기 전에 부채한도인 31조4000억달러를 넘어서는 방만한 지출규모부터 먼저 줄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응수하고 있다.

원래 부채한도 상한 제도는 미 정부가 해당 한도까지는 지출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미 정부가 특정 항목에 예산을 지출하려고 할 때마다 일일이 의회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신속한 집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채한도 상한 조정은 1940년대부터 따져보더라도 거의 매년 최소 한두번 이상씩 90회 가까이 이루어져 온 정치적 일상이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로 정치세력이 양극화되면서 부채한도 상한을 둘러싼 논쟁은 점차 정치적 알력 다툼의 장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미 정부와 의회 관계가 여소야대의 구조를 이룰 때 더욱 심각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2011년 셧다운 위기 상황을 떠올려 보면 당시 미 정부는 재선을 앞둔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맡고 있었지만, 미 의회 하원 다수당은 공화당이었다. 부채한도는 이미 초과하고 보유한 현금자산마저 모두 소진해 셧다운에 이르렀던 당시의 위기 상황은 디폴트 시한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서 미 정부와 의회의 극적인 합의로 간신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에 이번에도 결국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부터는 과거 미국의 정치적 문법이 더 이상 통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 문제해결을 위해 수개월에 걸쳐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양측의 입장이 팽팽함에도 이를 해결할 물리적 시간마저 부족하다는 점은 확실히 우려스럽다.

이번 위기 넘겨도 정치세력 양극화로 대립 재현될 가능성 높아

요행히 이번 위기를 잘 넘긴다고 하더라도 부채한도 상한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막대한 재정지원으로 2019년 GDP 대비 110% 정도이던 미 정부부채는 현재 130%에 육박하고 있고, 설상가상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 정부의 미 국채에 대한 이자상환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이든정부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 등 고질적인 의료비로 인해 이미 상당한 재정 부담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신냉전시대를 대비해 2024년 국방비를 8860억달러(약 1175조원)까지 늘리겠다는 뜻을 밝혀 미 의회의 요구와 달리 정부 부채는 당분간 줄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내부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상황까지 더해져 디폴트 위기에 대한 논쟁이 더욱 치열하게 자주 벌어진다면, 미 정부는 물론 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국채가 가치를 담보하는 미 달러화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