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개방형 혁신으로 부활하는 일본

2023-06-07 11:41:42 게재
김용래 세종대 석좌교수, 전 특허청장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은 2003년 하버드대 교수인 헨리 체스브러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폐쇄형 혁신은 아이디어 발굴에서 연구개발, 사업화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기업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개방형 혁신은 내부 울타리를 넘어 대학, 연구소, 다른 기업과 협력함으로써 혁신속도는 높이고 비용은 줄여 기업성과를 극대화한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2년까지 281개의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방형 혁신을 통한 신약 개발 성공률이 폐쇄형 모델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화이자는 바이오엔텍과 협력해 가장 빠른 속도로 백신 개발과 사용허가에 성공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포브스 500 상위 100개사의 68%는 스타트업과 전략적 제휴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개방형 혁신이 기업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보편적 추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개방형 혁신으로 부활 꿈꾸는 일본 반도체산업

최근 일본의 혁신방식 변화가 눈길을 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기 기술만을 고집하고 회사내에서 모든 것을 만드는 자사중심주의(自前主義), 블랙박스와 같은 독특한 폐쇄적 혁신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외부와 협력이나 혁신 공유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글로벌 경쟁 심화와 함께 제품수명이 짧아지고 기술이 복잡해지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이 어려워지면서 폐쇄적 혁신방식은 한계를 드러낸다.

2012년 출범한 아베정부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데 본격적으로 나선다. 대학발 벤처창업과 기술이전이 크게 늘고, 2013년 876억엔의 스타트업투자는 2021년 8828억엔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다. 대기업이 기업형벤처투자(CVC)등을 통해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하면서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의 개방형 혁신으로의 변화는 최근 반도체분야에도 잘 드러난다.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 디지털의 반도체공장을 유치해 일본 소재, 장비업체와 협력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일본 8개 기업이 공동으로 반도체회사 라피더스를 설립한다. 라피더스는 2나노 기술확보를 위해 IBM과 공동개발을 하는 한편, 유럽 최대 반도체연구소 IMEC와도 기술협력을 하고 있다.

한편 작년 5월 체결한 미·일 반도체협력기본원칙에 따라 향후 10년간 1조엔을 미·일 반도체 공동연구에 투입한다. 여기에 해외 기술인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톱 100 대학 출신의 경우 최대 2년 동안 거주하며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분야에서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 대책 마련 시급

우리나라도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혁신의 한계를 겪고 있어 앞으로 개방형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 최하위 개방형 혁신 수준에 머물러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21년 국내 제조업의 혁신활동비용 중 독자 R&D 비중이 92.7%로 대부분 기업들은 나홀로 R&D에 집중하고 있다. 국가 R&D 투자중 외국자금은 1%도 안되며 산업기술 R&D 중 국제 R&D 비중은 2%에 불과해 글로벌 수준의 개방형 혁신도 매우 저조하다. 최근 들어 GS 롯데 한화 현대차 등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벤처투자, 엑셀러레이팅을 통해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으나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경쟁, 탄소중립, 디지털전환과 같이 우리나라가 직면한 도전적 상황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혁신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융합과 기술수명 단축, 그리고 기술개발투자 대형화가 빨리 진행되면서 어느 한 기업 힘만으로 필요한 모든 기술을 투자해 개발하고 사업화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업 대학 연구소를 서로 연결하고 나아가 글로벌 차원에서 기술 인력 자금을 획득해 사업화하는 개방형 혁신으로의 전환이 시급하고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