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공무원도 전세사기 피해 위기

2023-06-15 11:14:48 게재

900채 보유 부부, 사기 의혹 수사 확대 … 이상 징후 발견 국토부서 수사 의뢰

수도권 '무자본갭투자' 의혹 또 제기 … 9일 현재 피해자결정 신청 2천건 넘어

부동산 가격 하락과 역전세 등의 영향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2030세대 경제적 취약계층이었던 것과 달리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대거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해 눈길을 끈다.

이런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피해자 인정 신청 건수가 2000여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세종시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소위 '주택여왕'과 가족이 보유한 주택이 900채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종경찰청은 이와 관련해 "부동산법인 대표 A씨와 그의 가족, 법인사무소ㆍ협력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등 8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A씨 보유 주택은 800여 채, 그의 남편이 보유한 주택은 100여 채로 파악됐다"며 "확인된 피해자는 146명"이라고 밝혔다. 세종시에 신고된 30채 이상 임대사업자 전체 주택은 6300여채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첫날인 1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내 전·월세 종합지원센터가 민원인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누구든 피해자 될 수있어 = 피해자들은 A씨와 가족 명의로 된 아파트나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에 전세로 거주하다 계약 만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A씨는 세입자들에게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야 돈을 내줄 수 있다'며 보증금 반환을 미뤄왔다. 피해자 146명 대부분은 20~30대 청년이며 그중 절반이 정부세종청사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와 그의 가족 보유 주택 수는 사건 초기 알려진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 A씨는 교통이 편리한 BRT노선 주변 부동산을 집중 매입해 세를 놓았다. 경찰은 지난 4월 A씨의 부동산 거래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한 국토교통부에서 수사 의뢰를 받은 직후 관련자들을 출국 금지한 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해 왔다. 경찰 수사에 압박을 느낀 A씨는 최근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사기 및 공인중개사법 위반이다.

A씨 부부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고 고의로 벌인 일이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 중이다. 공인중개사들 역시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나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며 "추가 피해자는 없는지 철저하게 수사해 사건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마다 공인중개사들 연루 = 이런 가운데 수도권 일대에 빌라 100여채를 보유한 일가족이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사기 등 혐의로 60대 B씨와 그의 일가족 등 10여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형사 입건된 상태고 나머지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와 명의신탁 방식으로 인천시와 경기도 일대의 1억~2억원대 빌라와 오피스텔 100여채를 매입해 임대해왔다. 이들은 임대기간이 끝난 피해자들에게 전세보증금 등 수십억원을 반환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100여명에 이르며, 대다수가 사회초년생과 노인 등 경제적 취약계층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초 이들이 관련된 다른 사건을 수사하던 중 추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수사를 확대해왔다.

B씨는 부동산분양대행·임대 법인을 운영했지만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취득세 등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됐다. 이에 그는 자신의 딸과 부인, 사위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범행을 이어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공인중개사들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B씨가 실소유주인 걸 알면서도 부인·딸·사위 등이 소유자인 빌라와 오피스텔의 임대차 계약을 도운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이 과정에서 임차인들에게 관련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앞서 불거진 전세 사기 사건들과 유사한 수법으로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한 피해 규모와 금액은 현재로선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매유예·정지 175건 의결 = 한편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에 피해자 인정 신청 건수는 2000여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546건이 경매유예·정지 협조건으로 의결됐다.

국토교통부는 14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제2차 분과위원회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접수한 경매 유예·정지 신청 183건을 심의해 175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8건은 다가구주택 관련 경매유예 요청 건으로 다수 임차인이 동일 주택의 권리관계를 공유하고 있어 다른 임차인의 의견을 고려해 미포함 결정됐다.

다가구주택은 다세대주택과 달리 등기가 세대별로 구분되지 않아 대항력이 앞선 순서대로 보증금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다.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갈 경우 후순위 임차인은 보증금 회수가 어렵게 된다.

위원회는 이날 결정을 포함해 총 546건의 경매유예·정지 협조 요청을 의결했다. 국토부는 지난 1일 전체위원회와 7일 분과위원회를 개최하고 경·공매 유예 신청건 371건에 대해 원안대로 의결한 바 있다.

의결된 신청건은 인천지방법원(310건), 부산지방법원(60건), 인천세무서(1건)에 경·공매 유예·정지 협조를 요청해 매각기일 변경 등의 조치가 진행 중이다.

각 시·도에 접수된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신청은 9일 기준 2113건에 달했다. 위원회는 이달 28일 열리는 2차 전체회의에서 처음으로 피해자 결정 안건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피해자 인정을 받으면 우선매수권, 경매자금 저리 대출 등 특별법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김선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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