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인공지능법안에 대한 단상
챗GPT로 가속화된 인공지능 열풍은 우리나라에서 추진하고 있는 '세계 최초 인공지능법'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지난 2월 국회는 인공지능 관련 7건의 법률안을 병합 심사해 대안으로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인공지능법안)을 제안했다. 해당 법안은 '안전과 인권'에 대한 사항이 미흡하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비판을 비롯해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인공지능법안과 비교해 인공지능(AI) 규제사항이 미흡하다는 지적 등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최초' 입법인 인공지능법안 추진 신중해야
하지만 인공지능법안 추진은 신중해야 한다. 특정 기술을 법에서 정의하고 해당 산업을 진흥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자칫 기술이 가진 중립성을 훼손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러나 특정 기술을 법이 위험한 것으로 정의해 버리면 그러한 기술은 중립성을 잃고 '위험'한 것이 된다. 제대로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법이 시장을 편향적으로 만들어 궁극적으로 기술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과거 인증기술 진흥을 위해 공인인증에 특정 기술을 강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자서명인증시장 경쟁력을 저하시키며 시민의 불편함만 가중시켰고, 결국 폐지돼 인증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을 진흥 혹은 규제하는 입법 추진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우선 '세계 최초' 입법이라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아직 본격 시장진입도 못한 우리나라 인공지능시장에 법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입법을 통한 특정 산업의 견인은 구(舊)산업적 발상이며, 구태의연한 진흥정책은 오히려 예산 낭비만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제 막 지펴지기 시작한 시장에 대한 규제는 산업 리스크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금은 시장의 자율과 혁신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을 기대하며 어떠한 내용의 입법이 필요한지 면밀하게 고민할 시기다.
둘째, EU와 미국, 그리고 한국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제조업 중심의 EU와 데이터 강국인 미국, 간신히 자체 플랫폼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인공지능 서비스의 지배력과 기술발전 속도도 다르다. 과거 EU는 역내 데이터베이스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도입했고, 우리나라도 이를 모델 삼아 2003년 저작권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해당 EU지침은 그 경제적 효과가 증명되지 못한 채 수정을 꾀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보호를 취하지 않은 미국이 데이터 경제의 최강국이 되었다.
셋째, 글로벌 상황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 2021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제41회 총회는 193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AI 윤리권고안을 채택했다. 이 권고안은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에도 적용되는 광범위한 사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AI 선도국인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했으며, 권고안을 서명한 국가 중에도 인권 의식이 미비한 것으로 평가되거나, 기술적 수준 미흡으로 적극적 이행 여부가 불확실한 국가가 다수다. 뿐만아니라 채택된 내용을 적극적으로 자국내 입법으로 수용한 국가는 현재까지 거의 전무하다. 지금은 선도적 입법보다 글로벌 상황을 지켜볼 때다.
각 영역에서 인공지능 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응 모색이 현실적
이제 막 시작된 시장에 기술규제를 통해, 혹은 기존 산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부가 관여하기보다는 해당 기술이 생태계에서 적용되어가는 양상을 지켜본 뒤에 입법의 실익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무법 국가가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이 야기할 위험과 불합리에 대응하는 기본적 입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독점이나 부정경쟁행위의 규제, 인권침해 대응,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보호, 공공의 불법 또는 부당 처분에 대한 구제 등 각각의 영역에서 인공지능 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은 더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