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 5성급 '새집' 즐비
VIP 고객 흰집칼새 유치전
안전하고, 깨끗하며, 수영장까지 딸린 호화로운 4층짜리 숙소가 인도네시아 북서부 보르네오 외딴 마을에 서 있다. 한두 채가 아니다. 해안가를 따라 수백 채가 즐비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건물들은 회색빛이며 실내는 어둡다. 창문조차 없다. 위치도 수상하다. 논두렁 등 인적이 드문 곳이다.
알고보니 흰집칼새를 유치하기 위해 세워놓은 인공 구조물이다. 새들만을 위한 5성급 호텔인 셈이다. 뉴욕타임스(NYT) 2일자 보도에 따르면 해안가 절벽 위 어두운 동굴 속에 둥지를 짓던 칼새들을 유치하기 위해 십 수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대한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유치에 성공하게 되면 둥지를 수확해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칼새의 타액으로 만드는 둥지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값비싼 별미인 제비집스프의 핵심 재료다. 마을 사람들은 새들을 인공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편안함과 안전을 보장했다. 깨끗한 환경에 해충과 포식자를 멀리하고 온도까지 조절해 주는 특급 대우를 해준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칼새 둥지 수출국이다. 수익성도 좋아 지난 10년 동안 마을의 새집 숫자는 5배나 늘어났다. 일부 주민들은 자기 집을 리모델링해 칼새가 거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새집들이 넘쳐나다 보니 이제는 공실에 시달린다. 칼새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칼새들이 반향 위치를 찾을 때 내는 딸깍 소리를 녹음해 재생하면서 칼새들을 유인할 정도다.
50피트(약 15미터) 높이의 새집 내부에는 천장을 가로지르는 나무 프레임이 있어서 둥지를 만들기 좋다. 또 환기구는 해충을 차단하기 위해 메시로 덮여 있고, 빛을 막기 위해 짧고 구부러진 파이프에 연결돼 있다. 심지어 지상에는 물웅덩이를 만들어 건물을 식히고 새들이 목욕도 할 수 있다.
칼새 둥지는 특수 도구를 사용해 조심스럽게 수확한 다음 손질해서 수출하며 온전한 흰색 둥지가 가장 좋은 가격을 받는다. 비싼 만큼 새 둥지 도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한 마을 주민은 NYT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새집이 20번이나 도둑맞았으며 콘크리트 벽이 뚫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둑이 훔치는 과정에서는 새끼를 죽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삼바스 리젠시 남쪽에 있는 해안 도시 싱카왕 역시 한때 주요 둥지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빈 둥지 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도 수십 개의 대형 새집이 있고 일부는 5층 높이에 달한다. 그러나 인구가 25만명으로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칼새 수가 급격히 줄었다. 대형 쇼핑몰이 새집 주변에 조성되기도 했고 수익도 감소했다.
한 농부는 전성기 때는 한 달에 약 10kg(약 22파운드) 둥지를 생산할 수 있었고, 이를 2만 달러에 팔 수 있었다. 이제는 한 달에 3파운드가 조금 넘는 둥지 수확량을 거두며, 1500달러 정도 수익에 그친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개발로 숲이 사라지면서 새들 먹이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이제 집과 땅을 팔거나 아니면 아보카도와 두리안 재배로 전환하기도 한다.
칼새도 농부들도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