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희생 민간인 시신 2구 신원 확인
진실위 “아산·대전 사건”
4000구 유해 발굴 후 처음
“우리 가족을 찾은 것 같아 고맙지만, 한분밖에 확인이 안 돼 안타깝습니다.”
25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 발굴 유해 2구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맹억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 회장이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반가움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맹 회장이 진실 규명과 유해 발굴에 나선 아산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1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그는 “유족들이 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던 분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산 민간인 학살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까지 아산 공수리와 백암리 일대에서 인민군 점령 때 부역했다는 이유로 경찰과 치안대에게 민간인 다수가 집단 살해된 사건이다. 진실위는 최소 800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현장에서 신원이 확인된 유해 1구는 아산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 하수홍씨다. 지난해 3월 발굴된 유해 62구 중 두손이 등쪽으로 꺾여 결박된 채 숨져 있는 시신이 하씨였다. 진실위는 하씨의 아들(1931년생)로부터 타액 등 유전자를 받아 대조한 결과 99.99%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하씨의 유해는 74년 만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청년이던 하씨의 아들은 현재 93세 나이가 됐다.
진실위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유해발굴에 착수한 이후 유전자 정보 분석으로 신원을 확인한 첫 사례다.
하씨는 1950년 10월 1일 집에서 경찰 트럭에 실려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점령됐던 고향마을에서 종중 추대로 리 인민위원장을 맡았다는 게 이유였다.
공수리와 배방리 일대에 매장된 시신은 최소 380구로 추정된다. 300명이 넘는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신청했는데, 일부만 진실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아산 지역 희생자 발굴을 위해 투입된 예산은 1억5000만원이다. 발굴 현장이 험지인데다가 예산을 이유로 발굴작업은 멈춰 있는 상태다.
또 다른 유해는 대전 형무소 사건 희생자 길 모씨다.
충남지구 육군 방첩대와 헌병대, 경찰 등이 1950년 6월부터 7월 사이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 최소 1800명이 살해한 것이 대전 형무소 사건이다. 2022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유해가 발굴됐다. 무려 1㎞에 달하는 구역에 시신이 묻혀 있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진실위가 발굴에 나서 이중 54구가 손목이 결박된 채 발견됐다. 진실위는 유족 40여명으로부터 유전자를 채취했고, 길씨 유족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엄 회장은 “유족들이 80~90대로 최근에 세상을 뜨시는 분이 있다”며 “오랜기간 가족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신원확인 작업을 보다 확대하고 더 많은 유가족들의 오랜 염원을 풀어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