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 지상전 앞두고 외교전 치열
미국-이스라엘 정상통화 … 하마스, 휴전협상단 이집트 파견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라파 공격을 반대하고 있고,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미국도 라파 공격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을 위해서는 라파 공격이 불가피하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통화를 통해 휴전협상과 라파 지상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백악관은 이날 전화 통화에 대해 “두 정상이 라파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그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규모 지상전을 전개할 경우 상당한 인명 피해가 있을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해왔다. 여기에 최근 미국 전역의 대학가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빠르게 번지면서 바이든 행정부를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이번 정상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라파 지상전을 만류하고, 하마스와의 일시 휴전 합의를 종용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백악관에 따르면 두 정상은 또 가자 지구내 인질 석방과 즉각적 휴전을 놓고 진행 중인 협상에 대해 점검하고,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 확대에 대해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주의 단체들과의 완전한 협력하에 가자지구로의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진전이 지속되고, 확대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백악관은 소개했다.
이와는 별개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수일 안에 이스라엘을 방문해 휴전협상 등에 대한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와 관련 “다음주 중동을 방문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최소 6주간의 일시 휴전이 성사되도록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들(이스라엘)은 우리의 견해와 우려를 공유하기 전에는 라파에 들어가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여 미국 역시 라파 공격에 대한 여론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관측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의 움직임도 눈길을 끌고 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특별 회의에서 “며칠 내로 이스라엘은 라파를 공격할 것”이라며 “가자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 주민이 그곳에 몰려 있기 때문에 작은 타격으로도 주민들은 가자지구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팔레스타인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라파 진입작전 없이는 하마스 소탕, 인질 구출, 가자 지구발 안보 위협 해소 등 전쟁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라파와 가까운 가자지구 남부 최대도시 칸 유니스에 피란민을 수용할 대규모 텐트촌이 조성되고 인근에 이스라엘군 탱크와 장갑차가 결집하면서 진입 작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아바스 수반은 “미국이 라파를 공격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에 요청할 것을 촉구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장기간 표류해 온 휴전 논의가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휴전·인질교환에 관한 이스라엘의 새로운 제안을 검토해 온 하마스는 29일 협상 대표단을 이집트 카이로에 보내기로 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하마스 관리가 전했다.
이스라엘이 내놓은 새로운 제안에는 전쟁 종식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 처음으로 포함됐다고 미국 매체 악시오스가 전했다.
복수의 이스라엘 당국자는 새로운 제안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한 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지속 가능한 평온의 회복’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고 전했다. 포로 교환을 위한 일시 휴전이 아닌 전쟁 종식에 대한 협상이 가능함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강경한 목소리도 만만찮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영상 메시지를 통해 “휴전 합의는 인질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만약 네타냐후가 항복하고 라파 공격 명령을 거둔다면 그가 이끄는 정부는 존재할 권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휴전협상과 대규모 피해가 예상되는 지상전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최종 선택지가 무엇이 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