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 휴전협상 모처럼 순항
완화된 이스라엘 요구안에 하마스 답변 준비 … 미국은 사우디 수교카드로 압박
로이터, AF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 대표단은 29일(현지시간) 중재국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스라엘이 제시한 협상안을 논의한 뒤 서면답변을 만들어 되돌아오기로 했다. 이집트 매체 알카헤라 뉴스는 하마스 협상 대표단이 이날 오후 늦게 출국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중재 지원국인 카타르에 거점을 둔 정치조직 인사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이 타결될 경우 이를 이행할 당사자는 가자지구 내에 있는 야히야 신와르를 비롯한 군사조직 수뇌부가 된다.
하마스 협상단이 소통을 통해 얼마나 빨리 긍정적 답변을 가져올 지가 관건이다. 그동안에도 몇 차례 협상이 있었지만 최근 기류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하마스 내부에서도 이스라엘이 제시한 휴전 협상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하마스 고위 당국자는 AFP통신에 “이스라엘 쪽에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분위기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또 협상안을 검토한 결과 “큰 문제가 없다”며 하마스의 답변이 며칠 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마스는 지난 26일 이집트를 통해 이스라엘의 새 휴전협상안을 전달받았는데 뉴욕타임스(NYT)는 지금껏 최소 40명의 인질이 석방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이스라엘 정부가 33명만 풀려나도 받아들일 용의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집트 당국자를 인용, 하마스가 첫 단계로 인질 20명을 풀어주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약 500명을 석방하고 10주간 휴전에 돌입한 뒤 영구 휴전과 관련한 추가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을 겨냥해 휴전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지상전이 임박한 가운데 가자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국제사회 여론을 바이든 행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측면과 함께 오는 11월 대선을 위해서도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특별회의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하마스가 받아 든 제안은 이스라엘로선 이례적으로 관대하다”면서 “그들(하마스)은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이제 6개월 이상 끌어온 유혈사태의 역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사우디와의 관계정상화 카드를 제시하며 휴전을 압박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과 사우디가 합의 측면에서 함께 진행해 온 작업이 잠재적으로 완료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진전시키려면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자지구의 고요함과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위한 믿을만한 경로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외무장관도 “아주, 아주 가까워졌다”며 “대부분 작업이 마무리됐다. 팔레스타인 전선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에 대한 광범위한 윤곽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는 바이든 행정부가 공을 들이는 외교정책 중 하나다.
사우디는 관계 정상화 대가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수준의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민간 핵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 허용 등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특히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략 중단과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없이는 이스라엘과 수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양국의 수교 논의 진전은 휴전에 미온적이었던 이스라엘을 겨냥한 압박 카드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카드는 하마스에도 압박이 될 수 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으면 하마스는 이란 외엔 의지할 세력이 없어 고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배경 중 하나가 이스라엘·사우디의 수교 협상이 급진전했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미국이 이스라엘엔 휴전에 합의하고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면 사우디와 수교해 대이란 공동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하마스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라는 숙원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던진 셈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