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임용 경력제도도 개선해야”
법조경력 2025년 7년→2029년 10년 확대 예정
재판지연 해소에 걸림돌 … 행정처, 법률 개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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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잦은 인사이동으로 재판부 구성이 자주 바뀌고, 그때마다 갱신 절차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공판 도중 판사가 바뀌면 공소사실 요지 진술과 피고인 인정 여부 진술, 증거조사 등을 다시 하는 등 절차를 갱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사재판 역시 변론 절차를 갱신해야 한다.
형사소송규칙에 따르면 공판절차 갱신에서의 증거조사는 피고인과 검사가 모두 동의하면 간략하게 진행할 수 있지만 피고인측에서 동의하지 않을 경우 법정에서 지난 재판부가 진행했던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전부 재생해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1심 재판의 경우 도중에 재판부 구성원이 모두 바뀌자,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전부 재생하자고 주장하면서 약 7개월간 녹음파일을 재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양 전 대법원장은 기소된지 4년 11개월 만에 1심 선고가 나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이 재판 지연을 심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법원 내 이른바 ‘워라벨’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애초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은 재판 실적으로 평가받은 뒤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거나 법원장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성과로 평가받을 일이 없으니 재판이 지연되는 건 당연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반응이다.
수도권의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폐지된 뒤 법관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진 것 같다”며 “게다가 일부에서는 소명대로 열심히 일하던 판사들도 주위의 만류로 오히려 적당히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다보니 재판 지연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부의 재판지연 해소책, 역부족 = 사법부는 재판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대책을 내놓고 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조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법원장의 재판 참여다. 지난 2월 법원행정처는 고등법원장과 대규모 지방법원의 법원장이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법원장 및 지원장의 재판업무 담당에 관한 지침’을 폐지하고, 전국 각급 법원의 법원장 및 지원장도 원칙적으로 법정재판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법관 사무분담예규를 개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장의 재판 참여는 일선 판사들에게 재판의 속도를 내도록 추동하는 요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실제 처리건수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재판지연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또 법관의 사무분담기간을 재판장과 배석판사 모두 1년씩 연장했다. 잦은 재판부 교체에 따른 사건 심리 단절과 중복이 재판 지연을 심화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혀 왔던데 따른 조치다. 지난해까지 재판장의 임기는 2년, 배석판사의 임기는 1년이었다. 사실상 매년 재판부 변경이 이뤄진 것이다. 복잡한 주요 사건의 경우 갱신 절차가 끝나면 사건을 제대로 심리할 시간도 없이 다음 인사가 다가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제1심 민사합의부 관할사건의 소가 기준을 ‘2억원 초과’에서 ‘5억원 초과’로 높여 제1심 단독재판부의 관할을 확대했다. 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료감정절차 개선을 위한 여러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다.
이 외에도 법원행정처는 재판절차의 신속성·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판결서 적정화 방안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검토 및 모범사례의 공유 △조정·전문심리위원제도 활성화 △영상재판의 활용 △진술녹취제도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증거수집 제도의 개선 △간이공판절차 적용 범위 확대 등도 검토, 추진하고 있다.
◆법관 증원·법조경력 관련 법률 개정 과제 = 법원행정처는 재판지연 해소를 위해 법관 수를 늘려 업무량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본다. 현재 법관 정원은 2014년 3214명으로 370명 늘어난 뒤 10년간 유지되고 있다.
법관 증원을 위한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이번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6년까지 법관 정원을 4214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2021년 11월 발의했고, 2022년 12월에는 2027년까지 3584명으로 늘리는 정부안이 발의됐다. 현재 정원보다 각각 1000명, 370명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두 법안 모두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5월 29일까지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그때까지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개정안은 임기만료와 동시에 폐기된다.
걸림돌은 ‘검사 증원’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은 ‘법원과 검찰청 조직은 대등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판사 증원에 검사 증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야당은 법관 정원만 늘리는 선에서 개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개정안 처리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으나, ‘검사정원법 일부개정법률안’과의 연계 등 다른 사정으로 국회가 1년 넘게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야 의원들 모두 법관 증원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만큼 제21대 국회 임기 내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정원도 문제지만, 2025년부터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는 것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앞서 2018년 최소 법조경력이 3년에서 5년으로 상향된 직후 2년 동안 임관한 법관 수가 급감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상 법관 임용 시 법조인 경력은 △2013년부터 3년 이상 △2018년부터 5년 이상 △2025년부터 7년 이상 △2029년부터 10년 이상이다.
특히 내년부터 적용되는 법조경력 ‘7년’은 변호사로 충분히 자리 잡을 만한 기간이라 판사 지원 유인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한 부장판사는 “대형 로펌 변호사 7년 차면 자리를 잡을 시기라 굳이 판사로 들어와 배석부터 시작하려는 인재들이 있을까 싶다”며 “법관 임용시 법조경력을 확대하도록 돼 있는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선일·서원호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