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와 전공 길라잡이
전공선택, 학과명만 보고 선택하면 입학 후'멘붕'
수학·코딩 비중 커지는 인문계열, 생각보다 더 어려운 SW전공 … 학과별 특성 꼼꼼히 따져봐야
대다수 학생은 고교 3년간 진로를 계속 고민한다. ‘관련 교과목을 잘하고 좋아해서’ ‘취업에 유리해서’ ‘학교 내신이나 수능 성적에 맞춰’ ‘학과보다는 대학 우선’ 등 나름의 이유로 자신에게 최적의 학과를 선택한다. 대학 입학처나 학과 홈페이지에서는 학과별로 어떤 교육과정을 배우고 어떤 성향이나 역량을 지닌 학생에게 어울리는지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입학 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잘 와 닿지 않는다. 일단 ‘원하는 대학 입학’이 목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 입학 후 나타난다. 기쁨도 잠시, 생각과 다른 전공 교육과정에 당황하기 십상이다. 취업에 유리하다고 선택한 전공은 적성에 맞지 않을뿐더러 어렵고 많은 학업량이 버거워 ‘멘붕’에 빠지는 일도 잦다. 이런 경우 대입에 다시 도전하거나 주전공보다는 복수전공 또는 다전공에 집중하며 대학 생활을 보낸다. 대학 입학 전 학과와 전공의 실체를 잘 알아둬야 하는 이유다. 대학생 선배들의 솔직한 경험담도 소개한다.
진로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학과나 직업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고교 때의 과목선택에 따라 지원 전공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데, 과목을 선택하는 고1~2까지 학생들은 전공이나 직업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보다는 과목 선택자 수, 공부량과 난도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고교 3년간 학과,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면 학과 이름으로 전공을 지레짐작하거나 원서 지원 시 경쟁률이나 성적에 따라 생각한 적 없는 전공을 선택하기도 한다.
◆‘전공’ 관심 커졌지만 학과 ‘교육과정’은 무관심 = 한승헌 연세대 융합과학공학부 1학년생은 “환경에 관한 관심이 많아 사회환경공학부 지원을 고려했다. 학과 교육과정을 살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회기반 시설과 관련 있는 토목공학과에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허 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연구원은 “단국대 파이버시스템공학과는 섬유공학과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섬유 재료를 소재로 하는 신소재공학의 성격을 띠지만 지원자 대다수는 섬유 관련 학과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또한 서강대 게페르트학부처럼 신설 학과 중에도 학과명으로는 전혀 학과특성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상당하다”며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대학의 학과 설명이나 교육과정을 살펴 고교 교육과정과 연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조용상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최근에는 학과들도 순수 학문에서 융복합 학문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심리학만 해도 예전에는 사회 및 성격 심리학, 임상 및 상담 심리학 등 인문 영역의 비중이 컸다면 최근에는 행동인지 뇌과학 등의 심리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려대는 심리학부에 입학해 수학·통계학·생명과학·공학 분야 전공과목을 선택해 자연과학적 심리학 역량을 높인다면 졸업 시 학위를 문학사가 아닌 이학사를 선택할 수 있다.
의공학 생명공학 의생명공학 생체의공학 등의 학과는 대학에 따라 배우는 내용이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건국대 의생명공학과는 생명과학과 화학을 중심으로 컴퓨터 정보통신이 결합한 학과지만 경희대 생체의공학과는 물리학 위주로 공부한다.
대학이 전공명을 시대 흐름에 맞게 또는 수험생이 선호할 만한 이름이나 교육과정으로 변경하면서 전공명만으로는 무엇을 배우는지 유추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대학마다 전공명은 비슷하거나 같지만 전혀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선입견으로 잘못 선택하는 학과 많아 = 특히 학생들은 학과 이름만으로 교육과정을 막연히 유추하는 경우가 많다. 방유리나 건국대 입학처 입학사정관은 “대학은 설명회를 통해 지원 전에 학과 교육과정을 꼭 살펴보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건국대의 경우 수험생의 학과 이해도가 낮은 전공으로 사회환경공학부와 글로벌비즈니스학과를 꼽을 수 있다. 사회환경공학부 지원자 중 대다수는 환경 관련 학과로 생명과학이 교육과정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환경을 바탕으로 사회기반을 계획하고 설계 유지하는 학과다.
건설공학이나 토목공학과 관련이 깊어 생명과학이 아닌 물리학이 중요한 모집 단위다.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역시 학과명만 보면 영어와 무역, 경영과 관련있는 학과 같지만 건국대에서 2년, 중국 난징대에서 2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복수 학위 과정으로 운영된다. 즉 중국과 관련된 역량이 핵심이다.
디지털미디어학과, 문화콘텐츠학과, 언론홍보학과도 유사해 보이지만 대학마다 교육과정이 다양해 학생들이 입학 후 당황하는 대표적인 학과이다. 콘텐츠 기획이나 애니메이션, 홍보, 미디어경영 같은 인문·예능 계열에 중점을 두는 대학도 있지만 프로그래밍과 소프트웨어 관련 교육과정에 집중하는 대학도 있다. 서울여대 디지털미디어학과가 대표적이다. 인문계열 중심의 미디어학과나 콘텐츠학과를 생각하고 입학한다면 소프트웨어 중심의 교육과정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화공생명공학부도 오해가 큰 대표적인 학과다. 학과명에 화학과 생명이 들어가 있어 자칫 화학이나 생명과학 중심의 학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시스템공학 화학 물리 재료 환경 에너지 기계 관련 교육과정을 배우는 만큼 물리학과 화학이 중요하다.
진수환 강원 강릉명륜고 교사는 “최근 학과들이 융복합 형태로 결합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해 학생들 입장에서는 고교와 다른 전문적인 지식에 학문 간의 결합으로 어렵고 당황스러울 수 있다"며 "학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인문 계열인데 수학·코딩한다고? = 인문계열 전공은 수학이나 과학과 연관성이 없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접목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사회 전반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예상하고 해법을 찾는 사회과학은 물론, 어문계열이나 역사학·철학 등 전통적인 인문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데이터 처리를 위한 통계 역량, 컴퓨터 작업을 위한 코딩 역량을 계열·전공을 불문하고 요구한다. 특히 경영 경제 통계는 자연 계열의 ‘미적분’을 뛰어넘는 수학적 역량이 필요하다는 후문이다.
주연제 성균관대 통계학과 3학년생은 “컴퓨터·수학 전공보다 코딩·수학에 진심인 통계학과”라고 소개했다.
●지금 전공의 특징을 이야기한다면?
성균관대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해 현재 통계학과 3학년이다. 심리학과도 복수전공 중이다. 통계학과에서 배우는 핵심 과목은 행렬대수학(선형대수학), 통계수학, 통계학 원론, 기초 코딩 과목, 회귀 분석 입문, 시계열과 바이오통계, 다변량 과목 등이다.
수학과 코딩 관련 수업이 많다. 실제 강의 내용도 미적분, 분포 구하기, 분석 작성하기 등이 주를 이룬다. 전공 교과목은 벼락치기와 암기가 거의 통하지 않으므로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다음 심화단계를 따라갈 수 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전공의 특징은?
전공에 진입한 후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다. 단순히 ‘수학이 싫거나 어려워서’라는 이유보다는 전공 공부를 이렇게 못 따라갈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당황스러웠다. 3학년이 돼 응용전공 과목을 들으면서 따로 시간을 내서 지난 과목을 복기하고 연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계를 이겨낼 만큼 열의를 자극하는 동기도 없었다. 통계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수학을 잘하겠다고 생각한다. 코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입학해서 알았고 수학과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수학에 진심인 학과다.
●통계학과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미적분’을 배운 학생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 따라가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공부하긴 어렵지만 통계학 자체는 사회에서 거의 모든 직무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전망은 밝다. 확률 분석, 통계적 해석, 분포 등을 활용한 상품 평가, 기획, 피드백, 계획, 연구진, 교육직, 회계, 재무관리, 기타 프로그래밍을 위한 계산 등 나열한 것을 제외하고도 통계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수학 역량이 우수하거나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 유망한 분야로 진출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학과다.
◆컴퓨터 역량 고려 않으면 ‘고통의 시간’ = 한주원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3학년생은 “대학에서 시작한 코딩·프로그래밍 공부, 진땀난다”고 소개했다. 의약학계열 다음으로 선호도가 높은 모집 단위로 컴퓨터공학, 소프트웨어학과가 꼽힌다. 취업률이 높고, 일반 공학계열에 비해 근무환경이 우수해 여학생의 선호도도 높다. 그러나 컴퓨터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진학하면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찌감치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역량을 쌓아온 ‘덕후’가 많아 학생 간 실력 차도 큰 편이다. 학업량이나 과제량이 상당해 대학 4년간이 쉽지 않다. 단 이 시기를 잘 이겨낸다면 취업이 보장될 만큼 미래 전망이 밝다.
●소프트웨어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소프트웨어학과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알지 못했고 정시에서 수능 성적에 맞는 학과를 찾다가 선택했다. 소프트웨어학과가 공대 중 유일하게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알고 지원했다.
●학과의 특징을 알려준다면?
컴퓨터 자체를 배우는 과목,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과목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하므로 프로그래밍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부량이 정말 많다. 빠르면 초·중학생 때부터 컴퓨터나 코딩에 관심이 많았거나 경험이 많은 학생이 상당해 학과 안에서 개인마다 역량 차이가 큰 편이다.
●전공을 고민하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소프트웨어 전공은 공부가 어렵고 코딩 작업도 오래 걸려 생각보다 더 쉽지 않다.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합격 후 입학 전까지 조금이라도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이나 C언어를 공부하고 오길 권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상태로 출발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