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조선 탈탄소 대응 '친환경선박개조' 뜬다
수출입은행 ‘포시도니아’ 보고서 … ‘레트로피트’ 논의 활발
이탈리아 선급 세미나 “선박연료전환으로 대응 어려워”
‘선상 탄소포집·저장’도 주목 … 미국은 원자력추진선 제시
세계 해운·조선업계의 탈탄소 대응에서 연료전환보다 친환경선박으로 개조가 부각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한국수출입은행은 17일 양종서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포시도니아2024에 나타난 선박시장의 이슈’에서 선박시장의 이슈와 주요 조선산업국 현황 등을 발표했다.
짝수 연도 6월 첫주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포시도니아(Posidonia)는 2년에 한 번씩 홀수 연도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되는 노르쉬핑(Nor-Shipping)과 함께 세계 최대의 해운·조선박람회로 꼽힌다.
포시도니아2024 주최측에 따르면 지난 3~7일 열린 올해 박람회에는 138개국 3만2527명이 방문했고 2038개 기업·기관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한국의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도 참여했다.
행사기간 중에는 조선사와 조선기자재사 선급 해운사 브로커(선박매매 중개인) 등 기업들과 각종 해사기관과 국가들의 전시회와 각종 컨퍼런스, 기술세미나, 홍보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려 선박시장 이슈에 대한 정보교류와 논의가 이뤄졌다.
◆석유연료 사용하는 3만6000척 ‘무탄소 연료 전환’ 난제 =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포시도니아2024’(이하 포시도니아)에서는 선박 시장의 가장 큰 이슈인 해운 탈탄소와 관련해 현실적 대안과 노력이 제시됐다. 그 중 레트로피트(retrofit)라 불리는 ‘친환경선박으로 개조’에 대한 정보교류와 논의가 가장 활발했다.
이탈리아 선급(RINA)이 개최한 세미나 ‘탈탄소 - 기회의 바다’에서 주제발표를 한 엘리아스 보레티스 RINA 선임자문역은 “현재 세계 해운 수요와 신조선 능력, 대체연료 공급 능력 등을 고려하면 기존 석유연료추진 선박의 개초를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세계 해운수요를 고려하면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약 3만6000척의 선박을 무탄소 연료추진선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이유다.
연간 1300척의 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계 신조선 능력과 여전히 신조선의 85%가 석유연료추진선박으로 건조 중인 현실이 거론됐다.
암모니아 메탄올 등 무탄소 또는 저탄소 연료에 대한 최종 투자결정 물량까지 고려해도 세계 해운업이 사용하는 연료의 1%에도 못미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엘리아스는 “세계 상선대의 대부분이 아직 선령 20년차 미만의 석유연료 사용 선박”이라며 “이를 무탄소선박으로 (모두)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선박개조를 통해 최대한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친환경 선박개조 유형은 돛(sail)을 이용한 풍력, 유체흐름 개선장치 등 각종 효율개선 장치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 ‘레트로피트55’ 컨소시엄은 별도 세미나를 열고 선박개조 기술을 소개했다. 컨소시엄에는 유럽 각국의 기술연구소 선급 기업 컨설팅사 엔지니어링사 조선소(수리조선 포함) 선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연료효율 개선기술을 선박에 적용해 해상운송에서 유럽의 정책목표인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55%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달성한다고 발표했다.
세미나에서는 풍력, 선체 아래 공기방울을 만들어 물과 접촉을 줄여 마찰저항을 줄여 연료효율을 개선하는 ‘에어 루브러케이션’(air lubrication), 선체와 프로펠러의 유체역학적 최적화 기술, 운항최적화 기술 등 연료효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선박개조 기술이 제시됐다.
세미나에서는 레트로피트 기술을 캄사르막스급(서부아프리카 캄사르막스 항구에 최적화된 선형. 파나막스급의 일종) 벌크선에 적용한 사례도 소개됐다. 구상선수와 프로펠러의 최적화, 에너지 저감장치 등으로 각각 1~3%의 효율을 개선했고, 운항최적화로 15%, 선박의 트림 최적화로 8%의 효율을 각각 개선했다. 돛이나 로터(회전) 형태의 풍력추진 장치 개발과 적용사례도 소개됐다. ‘에어 루브러케이션 시스템’ 개발과 실험도 소개됐지만 실선 적용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관심 커지는 ‘선상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 선상 이산화탄소 포집·저장(OCCS)은 상용화에 이르지 못했지만 올해 포시도니아에서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OCCS를 탄소배출 감축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국이나 기업, 각국 선급의 전시나 세미나에서도 OCCS는 등장했고 레트로피트55 프로젝트에서도 대안기술로 발표됐다.
특히 중국 국영조선협회(CSSC) 계열사 상하이치야오환경기술은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최대 80%를 포집할 수 있다는 실선 적용사례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회사는 대만선사 에버그린의 1만4000TEU급 컨테이너선에 OCCS장치를 장착해 효과를 검증했다.
해당 선박은 저유황유를 연료로 사용하며 연간 11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선박탄소집약도지수(CII) 규제 제재대상인 D등급에 해당한다. 회사는 이 선박에 1000만달러를 투입해 OCCS 설비를 장착했다. 선박개조 시간은 2개월 걸렸고, 설비를 선박 뒤에 장착해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 5%가 줄었다.
이를 장착해 실제 운항한 결과 90일간의 연속운전으로 이산화탄소 농도 99.7%의 액화가스를 얻었고 연간 4만40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였다. 회사는 이를 통해 연간 800만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CII 규제 등급을 C로 상향해 제재를 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또 그린암모니아 또는 그린메탄올 사용과 비교하면 톤당 온실가스 저감비용이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제시했다.
회사는 선상에서 포집해 압축·액화한 이산화탄소를 컨테이너 규격의 탱크에 보관·운송해 중국 양산항에서 하역하고 인근 창징(Changxing) 섬 보관기지로 옮겨 보관까지 하는 전 과정을 마무리했다며 해당 동영상을 상영했다.
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발표 후 OCCS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강한 유럽계 청중들이 오히려 많은 질문을 하며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OCCS는 한국을 포함 많은 나라들이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실선에 적용한 결과가 공개된 사례가 드물고, 세계 대부분 항만이 액화된 이산화탄소의 하역을 허용하지 않고 이를 보관할 장소에 대한 계약도 활성화되지 않아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자국의 인프라를 활용해 실선 적용까지 마무리해 상용화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암모니아·원자력추진 엔진 동향 = 포시도니아에는 탈탄소 연료로 전환에 따른 새로운 엔진을 개발 중인 엔진업계들 참여도 활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엔진업체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암모니아 엔진 출시를 위한 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만(MAN)은 올해 말로 예정된 암모니아엔진 상용화 일정에 이상이 없다며 출시를 위한 마지막 시험 중이라고 밝혔다. 스위스의 윈지디(WinGD)는 현재 스위스와 중국 상하이에서 시험을 진행 중이며, 내년 초 출시 예정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핀란드의 바르질라(Wartsila)는 이미 암모니아 엔진으로 ‘Wartsila 25’ 모델을 출시했지만 아직 실선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얀마(Yanmar)는 세미나를 통해 “수소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대체연료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며 “2026년까지 암모니아 엔진의 기본연구를 진행하고 2029년까지 실증테스트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독자 엔진 브랜드 ‘힘센엔진’을 갖고 올해 안에 암모니아 엔진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포시도니아에서 별도 발표는 하지 않았다.
원자력추진선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미국조선학회(SNAME)는 원자력추진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항공모함이 아닌 상선에 원자력을 적용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토론했다. 세미나에서는 용융염타입 원자로와 소형원자로에 대한 적용 가능성이 논의됐다. 발표에서는 소형원자로가 안전하다는 점과 현재 거론되는 친환경 대체연료에 비해 더 높은 효율성을 갖고 있고, 자원공급도 원활하다는 것이 공동으로 거론됐다.
미국조선학회는 소형원자로의 상선 적용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약 20년 후 소형 원자로가 경제적 타당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됐다.
하지만 소형 원자로가 안전하지만 정부의 지원 외에 민간 금융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폐기물처리 등에 대해서는 가능성만 언급한 채 깊이 있는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국내기업도 '레트로피트' 시장 확대 모색해야 = 보고서는 지난해 열린 노르쉬핑과 올해 포시도니아 특징이 뚜렷이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개최된 노르쉬핑2023에서는 암모니아연료추진선 실증, 액체수소연료추진선 등 아직까지 해운업계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미래 연료에 대한 도전적 프로젝트가 주로 소개되고 논의됐다.
하지만 올해 포시도니아2024에서는 지난해 논의됐던 도전적 과제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현존선에 대한 레트로피트(선박개조) 등 현실적 대응 방안이 주로 소개되고 논의됐다.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이런 차이점은 노르쉬핑은 기술기반의 기자재산업과 특수선 조선소 등 제조업과 해운업이 고루 발달한 북유럽에서 열렸고, 포시도니아는 세계 최대 선주국가인 그리스에서 열렸다는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포시도니아는 선주 중심의 해운·조선산업 특성을 반영해 보다 현실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양 연구원은 “올해 포시도니아 행사를 통해 레트로피트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교, 향후에도 이런 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국내 기업들의 레트로피트 시장 진출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