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와 공동교육과정
고교학점제 안착 ‘수업 선택권’ 관건…공동 교육과정 주목
정규 수업 시간에 이수 가능한 ‘온라인 학교’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앞두고 속속 개교
공동 교육과정은 학교 간 협력을 통해 교육과정을 공유하는 제도이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선택 과목이 대폭 증가했고 일선 학교에서 학생이 원하는 모든 과목을 개설하기가 어렵다 보니 교과별 거점학교 혹은 온라인에서 여러 고교의 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2018년 도입 이래 참여 학교와 개설 강좌가 대거 늘고 학생 참여율도 꾸준히 증가했다.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는 데다 대입에서도 관심 분야에 대한 흥미와 노력을 드러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2025년 전면 시행될 고교학점제에서는 과목 수가 더 늘어나기에 공동 교육과정의 역할이 커진다.
2023년부터 시범 운영된 온라인학교는 내년부터 전국 17개 시·도에서 전면 실시된다. 종전의 공동 교육과정이 방과 후 또는 휴일에 진행됐다면 온라인학교는 정식 학교로 개교해 수업도 정규 시간에 진행된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동교육과정의 현황과 온라인학교를 살펴봤다.
공동 교육과정에서는 주로 진로선택 과목이 개설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2024년 수시 교과전형을 운영하는 전국 200개 대학 중 진로선택 과목을 평가에 반영한 대학은 145개로 72.5%였다. 또 정성 평가 비중이 높은 종합전형에 비해 공통·일반선택 과목 기반 정량 평가 위주 교과전형에서는 내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서울권 대학 교과전형에서는 학생부 정성 평가를 반영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2025학년 수시 기준 서울 주요 대학 중 경희대 고려대 건국대 동국대 성균관대 한양대가, 지역 거점 국립대 중에선 경북대 부산대 등이 교과전형에 정성 평가를 반영하며 서울시립대는 2026학년 입시부터 교과전형에서 서류 평가를 도입한다고 예고했다. 정시에서도 고려대 서울대가 학생부를 평가에 반영하며 연세대는 2026학년에 이 대열에 합류한다. 다수의 입시관계자는 수시 교과전형과 정시전형에서 서류 평가를 도입하는 대학은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
교과전형의 서류 평가는 대학마다 평가 요소와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지망 계열(전공)과 관련한 과목 선택 이력 및 노력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2025학년 성균관대 교과전형을 예로 들면 교과 성적 100%로 선발하나 이 중 20%는 진로선택 과목을 정성 평가해 반영한다. 즉 종합전형뿐 아니라 지원자 간 성적 차이가 크지 않은 교과전형에서도 자신의 진로에 맞게 어떤 과목을 얼마큼 주도적으로 공부했는가가 변수다.
대학은 내년 고1부터 내신 5등급제가 시행되고 교과목 중 사회·과학 융합선택 과목 9개 외에는 모두 등급으로 산출되며, 수능 탐구 영역 출제 범위가 ‘통합사회’ ‘통합과학’으로 한정되는 등 큰 변화를 대입 전형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 중이다. 특히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내신체계가 바뀜에 따라 교과전형은 서류 정성 평가 또는 면접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상위권 학생의 지원이 몰리는 서울 주요 대학과 일부 지역 거점 국립대가 최근 교과전형 방식을 바꾸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과목 선택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목 선택 폭 넓혀준 공동 교육과정 = 과목 선택의 중요성과 함께 대두되는 문제가 있다. 일선 고교에서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모두 개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공동 교육과정이다.
학교와 학교가 협력해 대면·비대면을 넘나들며 다양한 과목을 개설, 여러 학교의 학생에게 수업 이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은 운영 형태에 따라 공유형과 거점형으로 나뉜다. 공유형은 2~3개 인근 학교를 권역화해 묶고 그 안에서 수업이나 특색 프로그램을 공유한다. 같은 공유 캠퍼스 또는 권역에 속한 학생만 신청할 수 있다. 거점형은 거점학교에서 교과목을 개설해 해당 지역 학생이 신청해 수강하는 방식이다. 공동 교육과정은 1학기 기준 이수 가능 학점이 학생당 최대 6학점이다.
손태진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은 소속 학교 교육과정의 충실한 이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학생은 그 후에 자신의 진로와 관심 분야의 추가 학점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 교육과정의 핵심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학교에 개설되지 않은 과목을 선택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고는 보통 교과 위주로 교육과정이 편성돼 전문 교과Ⅰ에 해당하는 과목과 특성화고 과목인 전문 교과Ⅱ에 속한 심화 과목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체능 계열 전문 교과 중 일부를 공동 교육과정으로 이수할 수 있다. 예체능 계열진로를 희망하는 일반고 학생에게는 진로에 다가설 수 있는 촘촘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있다.
다만 차이점은 있다. 손 장학사는 “예술고에서 전문 교과Ⅰ은 성취도 5단계 평가와 석차등급을 산출하지만 일반고에서 공동 교육과정을 통해 이수하면 진로선택 과목처럼 3단계 성취도 평가를 한다”고 설명했다.
◆대도시 장점 살린 서울 ‘콜라캠퍼스’ = 공동 교육과정은 2018년 도입 이래 각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지역에 맞게 운영돼왔다. 서울은 협력·협업을 뜻하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과 교정(학교 시설 부지)을 뜻하는 ‘캠퍼스(campus)’를 합성한 ‘콜라캠퍼스’란 이름으로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콜라캠퍼스는 공유형 선택 교육과정(공유 캠퍼스)과 거점형 선택 교육과정(거점학교)이 있다. 이 중 공유 캠퍼스는 2020년에 3개(9개교)를 시작으로 해마다 신설·확대돼 2024년 현재 18개(51개교)가 참여 중이다. 일반적으로 공동 교육과정은 방과 후나 주말에 수업이 이뤄지나 서울시교육청 공유 캠퍼스는 조금 다르다.
손 장학사는 “서울은 대도시의 특성상 고교가 많아 같은 공유 캠퍼스에 속한 고교끼리 수업 시간과 학사 일정을 맞추면 정규 시간 내 수업이 가능하다”며 “대부분 방과 후와 휴일에 진행하는 공동 교육과정의 단점을 보완한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북부2캠퍼스에 속하는 서울 창원고와 창원여고는 2023년 공유 캠퍼스 수업 과목 중 1개 교과를 정규 시간내 배정해 운영했다.
한편, 자연계열 진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과학Ⅰ·Ⅱ 8과목 이수나 교과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커 과학중점학교를 망설이는 경우에도 콜라캠퍼스에 길이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거점형 선택 교육과정 과학 영역의 과목은 대부분 영재학교나 과학고, 과학중점학교에서 개설하는 실험 과목이다. 실험 과목이 없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이 수업을 선택해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콜라캠퍼스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협력 교육과정 거점학교 신청 배너를 클릭해 회원 가입을 하고 신청하면 된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서도 해당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다.
인천시교육청은 ‘함께 꿈을 키워간다’는 의미의 ‘꿈두레’란 명칭으로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2015년에 11개교로 시작해 현재 중심학교 91교를 지정·운영 중이다. 거점형, 밴드형, 온라인형이 있다. 현재 225개 강좌를 제공하는 거점형은 인천 관내 고교 학생이 중심 거점학교에 가서 수강하는 형태다. 밴드형은 서울시 공유 캠퍼스와 비슷하지만 인천시는 2개 학교 간 교육과정을 공유한다. 현재 50개 강좌가 있다. 온라인형은 온라인에 기반을 둔 실시간 쌍방향 수업 과목을 개설하며 스튜디오 구축교가 중심학교가 되어 운영된다. 인천에서는 기존 온라인형(부평여고 인천예일고 선인고 인천고)과 최근 개교한 인천 온라인학교까지 총 다섯군데에서 27개 강좌를 시행 중이다.
도서 지역이 많은 인천시의 특성을 고려한 운영도 눈에 띈다. 박연심 인천시교육청 장학사는 “강화고 강화여고 덕신고 서도고 등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학생이 거점형 수업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이를 해결하려 다른 지역에 비해 수업 네트워크를 좀 더 유기적으로 만들었다”며 “같은 지역 내 학교간 교육과정을 수시로 공유하고 협력해 학생 맞춤형 밴드형 공공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이를 ‘꿈공존네트워크’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현재 인천시에서 공동 교육과정이 가장 활성화된 학교는 신현고다. 2024학년 1학기 14개 과목을 운영했고 2학기에는 18개 과목을 개설할 예정이다. 인근에 가까운 학교가 없다 보니 모두 거점형으로 운영된다. 최 교사는 “거점형 수업은 방과 후나 주말에 직접 타 학교를 찾아가서 들어야 해 온라인형에 비해 학생에게 부담이지만 자신의 진로에 대한 열정을 가진 타 학교 학생과 한자리에 모여 대면으로 토론·실험하고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과정은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17개 시·도 모두 운영 예정 = 공동 교육과정은 내년에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온라인학교가 모든 시·도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온라인학교는 기존의 공동 교육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소속 학생은 없지만 교실과 교사 등을 갖추고 지역 내 개별 고교 학생에게 수업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다.
기존 공동 교육과정은 자신이 속한 학교의 정규 교과를 듣고 추가로 공동 교육과정 과목을 이수했다면 온라인학교 수업은 정규 수업 시간에 진행된다. 2023년 경남 광주 대구 인천 등 4개 지역에서 문을 열었고 올해 2학기엔 대전 강원 경기 경북 전북 전남 충북 제주 등 8개 지역에 신설되며 내년엔 전국 17개 모든 시·도에서 운영된다.
김지연 인천 온라인학교 교사는 “인천시는 도서 지역이 많아 다른 시·도와 달리 꿈두레 공동 교육과정에서 거점형, 밴드형과 더불어 온라인형을 활발히 운영해왔다”며 “다년간의 온라인형 공동 교육과정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에 신설된 인천 온라인 학교는 1400여명의 학생이 활발히 참여 중이며 내년에는 훨씬 더 다양한 강좌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표).
경기도는 9월 온라인학교 신설을 앞두고 있다. 임진우 경기 동남고 교사는 “현재 동남고에선 40여명의 학생이 참여 중인데 올해 2학기 온라인학교가 신설되면 자신의 희망 진로와 관련된 심화 과목 개설을 요청하는 학생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적은 온라인학교의 학업 성적 관리 규정, 과목별 평가 계획에 따라 평가해 산출하며 ‘2023년 학교생활 기록 작성 및 관리 지침’의 공동 교육과정 관련 사항에 근거해 나이스(NEIS)에 기록하고 소속 학교로 전송한다. 소속 학교에서는 이에 근거해 과목 이수를 인정하고 학생부에 반영·관리한다.
김기수 기자·이도연 내일교육 리포터 ldy@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