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분기 성장률 0.8%…올해 명목GDP 600조엔 넘어설듯
1991년 500조엔 돌파한 이후 33년 만에 달성 가능성
기시다, 아베의 염원 ‘GDP 600조엔’ 돌파 성과 강조
언론 “소비와 실질GDP 정체, 경제 진짜 실력은 한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600조엔(약 55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 이미 명목GDP 500조엔을 넘어섰지만 장기간 이어진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으로 30년 넘게 600조엔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일본 내각부가 15일 발표한 ‘2024년 2분기 국내총생산(GDP)’(속보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8%로 2분기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연간 실질GDP 성장률은 3.1%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성장률이 플러스 추이로 돌아선 데는 자동차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과 민간소비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완성차 업체는 올해 1분기 품질인증과 관련한 부정으로 상당기간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빚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1분기 실질GDP 성장률(-0.6%)은 뒷걸음질 했다. 2분기는 완성차 업체의 생산과 판매가 정상화되면서 경제 전반에 활력을 줬다는 평가다. 내각부 관계자는 “개인소비 증가에서 절반 가량은 자동차가 점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분기 개인소비는 전분기 대비 1.0% 증가해 5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설비투자(0.9%)와 수출(1.4%) 등도 모두 플러스 성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다이하츠공업 등의 품질 부정사건 영향으로 멈췄던 생산과 출하가 재개되면서 자동차 소비가 회복했다”며 “자동차 이외의 에어콘과 휴대전화 등 내구재 소비도 증가하면서 성장률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이날 발표에서 명목GDP 600조엔에 주목했다. NHK는 15일 “명목GDP가 사상 처음으로 600조엔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고, 아사히신문도 16일 “연율 환산 사상 첫 600조엔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이 명목GDP 600조엔에 주목하는 데는 그만큼 오랜 기간 경제가 사실상 정체했고, 600조엔은 경제가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1년 이미 명목GDP 500조엔을 넘어섰다. 당시 거품경제의 끝물에서 일본은 전세계 주요국 가운데 처음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어서는 등 거품 호황을 구가하던 때이다. NHK는 “1991년 3분기 연간 환산으로 500조엔을 넘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500조엔 밑으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한 나라의 명목GDP는 성장률과 함께 물가상승률 등 GDP디플레이터를 합산해 산출하는 지표로 국가 경제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 등을 보여준다. 일본은 1990년 초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무려 20년 동안 경제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이 역성장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들고 나온 목표가 ‘명목GDP 600조엔’ 달성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5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명목GDP 600조엔 달성을 명확한 목표로 내걸고 싶다”고 말하면서 구체화했다. 그해 일본의 명목GDP는 530조엔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 내각부는 매년 실질 경제성장률 2%, 명목 성장률 3% 이상이면 2020년까지 600조엔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러한 목표와 전망은 깨졌다. 2019년 560조엔까지 갔던 명목GDP는 2020년 540조엔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0년 2분기 실질GDP가 마이너스 4.8%로 큰폭의 하락을 가져오면서 명목GDP도 감소로 돌아선 것이다. 이후 지난해까지 플러스 성장률로 돌아서고, 물가가 3% 안팎의 상승률을 보이면서 명목GDP도 다시 커졌다.
NHK는 “처음 500조엔을 넘어선 후 33년, 아베 정권이 목표로 내세운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600조엔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을 보인다”며 “정부는 올해 경제 및 재정운용 방침에서 2040년쯤 명목GDP 1000조엔 달성도 가능한 것으로 추산했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도 “아베 정권시대인 2015년 내걸었던 600조엔이라는 목표를 9년 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면서 “명목GDP 600조엔을 넘어섰다는 숫자는 임금인상과 투자가 견인하는 성장형 경제로 이행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이러한 성과에도 일본 경제의 실질 성장추이는 여전히 미미하고 물가상승에 따른 착시라는 지적도 강하다. 아사히신문은 “명목GDP가 600조엔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물가 상승에 따른 겉보기 성장”이라며 “소비는 정체하고, 실질GDP 성장은 미미한 수준에 그쳐 경제의 진정한 실력은 좋아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