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한일청구권자금 소송 패소
피해자 “국가, 개인청구권 침해”
법원 “일본에 배상청구 해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보상 소송은 일본을 상대로 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잇따라 나왔다. 2018년 대법원이 ‘일제 불법 지배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사라지지 않았다’고 판결한 만큼 다툴 상대는 한국정부가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소멸했다는 기존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최규연 부장판사)은 28일 A씨 등 피해자 유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또 같은 법원 민사합의45부(김경수 부장판사)도 이날 B씨 등 피해자와 유족 10명이 같은 취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은 2017년 국가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받은 자금에 대해 1인당 1억원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하거나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재판에서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강제동원 피해자의 상속인인 원고들이 일본 또는 일본 기업에 대해 직접 강제동원 피해에 관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게 됐다”며 “이 협정에 따라 청구권 자금을 지급받은 이후 경제발전 사업 등에 소비해 원고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벌인 침략·불법 행위에 대해 ‘경제협력자금’이란 이름으로 ‘무상 3억달러, 장기 저리의 정부 차관 2억달러’ 등 5억달러를 받아 국가 기초 인프라 사업 지원에 투입해 국가와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청구권 자금 수혜기업은 한국수자원공사 코레일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전력 등 공기업 10곳, 외환은행 등 금융기관 5곳, 공공기관 2곳, 정부 지분 참여기업 4곳, 민간기업 9곳이 포함됐다. 특히 포스코는 청구권 자금 가운데 1억1948만달러를 받았다. 이는 한국 정부가 받은 5억달러의 23.9%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개인 보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법원 판단을 거론하며 개인들의 청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 1월 선고한 판결 등에서도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에 대한 상고를 기각했다”며 “이러한 취지에 따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하급심 판결들도 여러 건 선고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구권 협정으로 원고들의 일본이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상실됐음을 전제로 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는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에서 받은 자금은 징병·징용으로 희생된 선친의 피와 땀의 대가로 받은 피해보상금”이라며 “당시 박정희정부는 보상금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개별 지급하겠다고 했으나 한국 경제발전의 종잣돈으로 썼다”고 지적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