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틱스-밥캣 주식교환 철회…불공정 합병 이슈 ‘여전’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로보틱스 합병 계속 진행
합병비율 변경…금감원 증권신고서 통과 여부 주목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개편 차원에서 추진해 온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의 합병 계획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의 인적분할로 생기는 신설법인과 두산 로보틱스간의 합병계획은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며 합병 비율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반 주주들과 정치권에서는 두산그룹이 문제가 됐던 지배구조 개편안 중 일부를 철회한 것에 불과하다며 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공정한 합병이슈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합병비율 변경 검토 중” =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29일 각각 긴급 이사회를 열고 양사 간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의했다. 이날 장 마감 후 두 기업은 공시를 통해 “주주와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회사의 정책·기조, 기관투자자의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시너지가 존재하더라도 현시점에서는 이를 추진하지 않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철회 사유를 설명했다. 포괄적 주식교환 철회의 주요 배경으로는 두산밥캣 주주는 물론 일부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반대 속에 금융당국의 연이은 압박 행보 등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 기업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인적분할 이후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가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개편은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를 기존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소유한 신설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이 분할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안은 철회하지 않은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는 작업만 마무리해도 차입금 7000억원 감소 등 1조원 상당의 신규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다.
두산그룹은 금융감독원의 정정요구 사항을 반영해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과 로보틱스 간 합병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분할합병비율 변경 가능성과 관련해 “충실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심사벽 넘을 수 있을까 = 포괄적 주식교환을 철회하여도 합병은 진행하기 때문에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는 여전히 금융감독원의 심사 대상이며, 2차 정정요구는 유효하다. 때문에 금감원의 높은 심사벽을 두산이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6일 두산그룹이 제출한 두 개의 증권신고서(합병, 포괄적 주식교환)에 대해 2차 정정을 요구했다. 이때 이례적으로 분할신설법인의 가치 평가방식을 재점검해야한다는 점이 정정 요구 배경이라고 밝혔다.
이는 로보틱스-밥캣이 취소한 포괄적주식교환의 앞 단계에서 이뤄지는 로보틱스와 분할신설법인(에너빌리티에서 떨어져나온 서류상 비상장회사로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의 합병비율(1대 0.12)에 관한 지적이다. 금감원은 특히 분할신설법인의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수익가치(미래 가치)를 제대로 평가했는지 문제 삼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8일 두산의 사업 재편을 두고 정정 증권신고서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두산은 포괄적주식교환 철회 계획을 밝혔지만, 금감원의 지적을 반영한 합병 관련 정정 신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다음 달 25일로 예정한 주총이 열리기 전까지 합병 신고서의 효력을 발동시키려면 이날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날 예정된 에너빌리티, 로보틱스 주총 일정도 연기 수순을 밟게 됐다.
두산 측은 “금융당국의 정정요구 사항을 충실히 반영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시장 의견 등을 수렴해 주총 등 추진 일정을 재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 주주들 싸늘 “사건의 본질 변하지 않아” = 한편 일반 주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치권에서도 불공정한 합병 이슈가 여전히 남아있는 점을 지적했다.
두산 그룹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인적분할에 대한 기존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자회사였기 때문에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인적분할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날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팀은 입장문을 내고 “포괄적 주식 교환을 철회했다고 해서 이 사건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밥캣을 로보틱스에 빼앗기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에너빌리티가 ‘알짜 자회사’ 밥캣을 로보틱스에 넘기게 되면 부채비율이 올라가게 되고, 에너빌리티는 더 이상 밥캣의 배당수익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도 우려된다. 국민연금은 올 상반기 말 기준 에너빌리티와 밥캣 지분을 각각 6.94%, 6.49% 보유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SK E&S의 합병에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된다’며 반대표를 던진 만큼, 두산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반대표 행사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판단하는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는 기금운용본부에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 결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수책위 위원 3분의 1이상이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해 회부를 요청할 경우 수책위로 의결권행사 권한이 넘어간다.
정치권에서도 불공정한 합병 이슈가 여전히 남아있는 점을 지적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두산밥캣의 소수주주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만 두산에너빌리티 소수주주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공정한 합병이슈가 그대로 남아있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간의 합병을 지켜보겠다며 기업 합병시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한 ‘두산밥캣 방지법’의 법제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