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고무줄 회계이익’ 제동…상세 공시로 ‘건전성 옥석 가리기’
‘미래 손해율·해지율 가정’ 달라 회사별 이익 편차 … 당국, 원칙 모형 등 가이드라인 제시
다른 모형 적용시, 외부에서 알 수 있게 상세히 비교 공시 … 보험사별 건전성 비교 가능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라 보험사별로 향후 손해율, 해지율 등을 달리 가정해 ‘고무줄 회계이익’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해지율·손해율 산정의 원칙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원칙과 다른 가정을 할 경우에는 그 차이를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해서 보험사의 경영 현황을 외부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7일 이 같은 내용의 ‘IFRS17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과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연착륙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4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제4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최종 방안을 마련했다.
보험부채를 시가평가하는 회계기준인 IFRS17이 지난해 시행되면서 보험부채 산출시 반영되는 향후 손해율과 해지율 등 계리가정의 재무적 중요성이 증대됐다. IFRS17은 결산 시점의 시장금리를 감안한 할인율과 손해율, 해지율 등 최적 계리가정을 반영, 보험부채를 시가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리가정은 개별 회사가 경험통계·계약자 특성 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이익 증가율이 달라짐에 따라 보험사의 자의적 가정이 문제가 됐다. IFRS4 대비 IFRS17 이익 증가율은 –782%에서 189%에 이를 정도로 차이가 크다.
◆당국, 낙관적 가정 않도록 원칙 모형 제시 = 보험부채 산출시 손해율과 해지율 등을 낙관적으로 가정하면 보험계약마진(CSM)이 과대계상된다. 무·저해지 상품의 경우 납입기간 중 해지시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임에도 완납 직전까지 해지가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통상 이 같은 상품은 해지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험통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완납 직전까지 높은 해지를 가정하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보험사들의 이같은 비합리적인 가정을 전제로 상품의 수익성을 산출했고, 보험료를 할인해서 상품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신계약 무·저해지상품 비중은 2018년 11.4%였지만 2021년 30.4%, 지난해 47.0%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63.8%에 달했다. 무·저해지 상품으로 갈아타는 가입자들이 늘면 표준형 상품의 해지가 증가하고, 이를 근거로 다시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추정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족한 경험통계를 보완해 해외사례·산업통계를 통해 분석한 결과, 완납 시점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모형 중 로그-선형모형(원칙모형)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보험사들이 원칙모형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감사보고서와 경영공시에 다른 모형 선정의 특별한 근거와 원칙모형과의 차이(보험계약마진, 신지급여력비율, 당기순이익 등)를 상세히 공시하도록 했다.
금융감독원은 예외모형을 선택한 모든 보험사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계리법인에 대해서도 감리 근거를 신설해 외부검증의 적정성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당국의 이번 조치로 대형 손해보험사의 경우 최대 1조원대의 보험계약마진이 줄어드는 곳이 나올 수 있고, 일부 보험사의 경우 신지급여력(킥스)비율이 감독당국 권고기준인 150% 이하로 낮아지는 곳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보험업권의 거세게 반발이 예상된다.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에 영향 미칠듯 =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부 투자자들이 정확하게 보험회사의 건전성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자본확충을 위해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경우 ‘자의적 계리가정’을 통해 회계상 이익률을 높이더라도 투자자들이 비교 공시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가정 역시 이번 조치에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입기간이 5~7년 정도로 짧지만 10년이 지난 시점에 보너스 등의 부과로 환급률이 높은(135%) 종신보험이다. 소비자들은 사실상 저축성 상품처럼 인식해 보너스 수령시 해지할 유인이 크다. 하지만 보너스 지급 시점 환급금 수령 목적의 추가해지를 고려하지 않는 보험사들이 다수인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향후 실제 지급 시점에 추가해지가 대량 발생할 경우 유동성 부담 및 당기손실 급증이 우려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합리적인 수준의 추가해지를 반영하도록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표준형 상품의 누적유지율을 활용해 해지 수준을 역산하거나, 30% 이상으로 추가해지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30% 최소 기준은 방카채널(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11차년도(비과세요건 충족으로 환급률이 급증하는 시점) 해지율 산업통계의 최근 10년 평균이 29.4~30.2%인 점을 고려했다.
이 밖에도 다수 보험사가 보험부채 산출시 손해율 가정을 경과기간·담보별로만 구분하고,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있어서 연령에 따른 손해율 추세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손해율을 연령별로 구분해 산출하도록 했다. 경험통계를 반영할 경우 상해수술 담보 손해율은 30대 89%, 40대 103%, 50대 140%, 60대 186%로 높아진다.
◆보험부채 할인율, 3년간 단계적 적용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를 위한 연착륙 방안도 마련했다. 보험계약은 주식·채권과 달리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아서 시장가격을 직접 평가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보험계약의 장래 현금 유출입 등 현금흐름을 추정해 이를 현재시점으로 할인해 시가평가를 한다. 따라서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할인율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실적에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 할인율은 단일한 수치가 아닌 시점별 수익률 곡선이며, 실무적으로는 국고채 수익률을 토대로 산출한 무위험 금리기간구조에 유동성프리미엄을 가산해 산출된다. 무위험 금리기간구조는 국고채 금리를 기초로, 만기가 매우 긴 보험부채 특성(최대 120년)에 맞춰 시장 금리 구간(관찰금리)과 통계모형으로 산출한 구간(추정금리)으로 구성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8월 ‘할인율 단계적 현실화 방안’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또 내년 최종 관찰만기(보험부채 할인율 곡선에서 실제 국고채 금리를 활용하는 구간)를 현행 20년에서 30년으로 확대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최근 시장금리 하락으로 당초 예상했던 수준을 뛰어넘는 재무적 충격이 예상되면서 금융당국이 속도 조절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금리 하락으로 현재 할인율은 현실화 방안 검토 시점 대비 1.24%p 하락해 당초 예상 수준을 초과했다. 최종관찰만기를 30년으로 확대하되 3년 간 단계적으로 적용해나갈 방침이며, 금리상황에 따른 시행여건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을 올해 연말 결산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손해율 가정은 회사 내 결산 시스템 수정 등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경우 내년 1분기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할인율 연착륙 방안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개선조치를 통해 보험회사가 계리적 가정을 합리적으로 산출하는 기틀을 마련하고, 산업이 장기적인 시계에서 성숙하는 토대가 확립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