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부업과 전쟁에도 피해 증가

2024-11-14 13:00:06 게재

올해도 신고·검거 증가세 … 고금리·불법추심 넘어 성 착취 동반 신·변종도 등장

경기침체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고금리 불법사금융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불법대부업자들은 저신용·저소득 청년이나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약한 고리를 교묘하게 파고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부산 사상경찰서는 지난 5월 대부업법, 채권추심법 위반 등 혐의로 30대 A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온라인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들에게 평균 연 2234%, 최고 연 16만7900% 금리로 돈을 빌려줬다. 50만원을 빌린 채무자에게 다음날 원금과 이자를 합쳐 280만원을 상환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돈을 빌린 사람 가족과 친구, 직장동료에게도 전화하는 불법 채권추심 행위도 일삼았다.

피해자 92명은 미등록 불법대부업자인 이들에게 2억2000만원을 빌렸다가 이자만 5억6000만원을 뜯겼다.

◆신고 건수도 연평균 20.6% 증가 = 최근 은행권 등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서민들을 상대로 한 불법사금융 피해가 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 검거 건수는 1399건, 검거 인원은 2160명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8.7%, 4.2% 증가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불법대부업 행위 등 대부업법 위반이 검거 건수 701건, 검거 인원 1264명으로 전년에 비해 각각 6.7%, 16.8% 늘었다.

같은 기간 불법추심 등 채권추심법 위반 역시 435건으로 전년 대비 42.6% 증가했다. 다만 검거 인원은 540명으로 8.3% 감소했다. 법정 최고 연이율 20%를 넘긴 이자제한법 위반은 263건으로 21.2% 늘었고, 검거 인원은 355명으로 11.5% 줄었다.

올해도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올 상반기 불법사금융 검거 건수는 877건, 검거 인원은 1437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검거 건수와 인원도 지난해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건수는 2020년 7350건에서 2021년 9238건, 2022년 1만350건, 2023년 1만2884건으로 연평균 20.6% 증가했다.

불법사금융 업체란 금융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지 않고 ‘미등록 영업’을 하는 대부업체를 말한다. 현행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지만 이들은 수백%부터 수천%의 금리를 뜯어간다. 특히 폭행이나 협박, 심야 방문·전화 등 불법 추심행위도 동원한다.

지난 9월 서울 시내에 부착된 사금융 관련 광고물.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여성 피해자에 나체 사진 요구도 = 성 착취를 동반한 신·변종 불법사금융도 증가 추세다. 돈이 급한 사람에게 인증 절차를 빌미로 사진과 지인들의 연락처를 받아내고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지인들에게 뿌리겠다고 협박한다. 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나체사진을 요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경남 양산경찰서가 법정 이자율을 초과해 불법 대부업을 운영한 혐의(대부업법 위반)로 구속한 B씨 등 일당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2022년 10월부터 지난 2월까지 명함 광고물을 무작위로 뿌린 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피해자들은 주로 식당 등 소규모 자영업자나 배달 기사 등 제도권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일당은 평균 410%, 최대 610%까지 이자를 받아 챙겼다.

이들은 채무자들 집이나 사무실에 찾아가 이자 납부를 독촉하며 폭행과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특히 한 여성 채무자에게는 직장을 찾아가 나체사진을 요구하며 직접 촬영한 뒤 휴대전화에 보관하기도 했다.

◆대통령 지시에 앞다퉈 ‘강경대응’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민생 현장 간담회에서 “불법사금융은 단속을 하면 없어지다가 조금 취약해지면 독버섯처럼 나온다”며 “금감원, 국세청과 검찰, 경찰의 어떤 팀워크, 팀 수사가 중요하다”고 불법사금융과 전쟁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나서자 정부도 ‘불법사금융 척결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대대적인 합동단속에 나섰다. 이후 관련 기관들이 앞다퉈 실적 홍보에 나서는 사이 불법사금융에 고통받는 서민들은 증가했다.

실제로 최근 홀로 딸을 키우던 30대 ‘싱글맘’이 불법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 C씨는 사채업자들에게 수십만원을 빌렸지만 높은 이자율 탓에 한 달도 되지 않아 원리금이 1000만원 수준에 이르렀다. 사채업자들은 C씨를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6살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런 소식에 윤 대통령이 “불법추심은 악질 범죄”라며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추심을 뿌리 뽑도록 하라”고 12일 다시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보다 강도 높은 불법 추심 단속과 처벌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특히 경찰은 폭행과 감금 등 악질적인 채권추심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을 내년 10월 31일까지 1년 연장하고, 성착취 추심 등 불법행위에 총력 대응할 방침이다.

◆민생법안 외면, 국회도 책임 = 일부에서는 불법사금융 피해가 확산되는데도 정쟁에 민생법안을 외면한 국회의 입법 공백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사금융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자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부업법 개정안)이 여러건 발의됐다.

이들 법안은 이들 법안은 미등록대부업자가 대부계약을 체결한 거래상대방에 대해 원금과 이자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거나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경우, 이자 계약 전부를 무효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 논의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22대 국회에도 의원과 정부가 발의한 대부업법 개정안이 총 18건 계류돼 있다. 대부업법 개정안은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화 및 불법이득 제한 △대부업자 진입·퇴출요건 강화 △불법대부업에 대한 제재·처벌 수준 상향 △미등록대부업자 명칭 변경(불법사금융업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싱글맘’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여야는 대부업법을 민생법안으로 지정,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13일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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