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취업 난항에 내년 최소선발인원 축소
올해 1250명 → 내년 1200명으로
증원 이어오다 2007년 이후 첫 감소
금융위, 축소 규모 최소한으로 조정
올해 합격한 공인회계사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금융당국이 내년 공인회계사 최소선발예정인원을 소폭 줄였다. 2007년 한 차례 선발인원을 줄인 이후 첫 축소다.
22일 금융위원회는 전날 공인회계사 자격·징계위원회(위원장 김소영)를 열고 2025년도 공인회계사 최소선발예정인원을 1200명으로 결정했다. 2025년도 공인회계사 1차 시험 합격자 수는 2900명으로 의결했다.
금융위는 “2025년도 최소선발예정인원은 비회계법인의 회계사 채용수요, 수험생 예측가능성, 올해 미지정 회계사 증가에 따른 수급부담, 회계인력 이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으며 따라서 올해 보다는 최소선발인원이 소폭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최소선발예정인원을 전년 대비 150명 늘려서 1250명으로 확대했다가 다시 축소한 것이다.
올해 최소선발예정인원에 해당하는 1250명의 회계사 시험 합격자가 배출됐지만 대형회계법인인 빅4(삼일 삼정 안진 한영)에서 채용인원을 줄였고, 다른 회계법인들도 신규 인력 채용에 소극적이어서 미취업자들이 발생했다. 문제는 실무수습을 해야 하는 합격자들이 수습기관을 구하지 못해 정식으로 회계사 등록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년 이상 실무수습을 하지 않으면 회계사 등록을 할 수 없고 회계감사를 하지 못한다.
올해 이 같은 ‘미지정 회계사’가 늘면서 김 모씨 등 합격자 83명이 ‘공인회계사 합격자 미지정 문제 해결 촉구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회계업계는 내년도 최소선발예정인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당국에 강하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회계업계의 현실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지난해 감사원으로부터 회계사 선발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을 받은 만큼 소폭 축소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감사원은 ‘공인회계사 선발시험’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치사항으로 “앞으로 공인회계사시험의 최소선발예정인원을 결정할 때 일반기업·공공기관 등 비회계법인과 회계환경 변화에 따른 회계법인 등의 수요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라”고 금융당국에 통보했다.
지난해 금융위는 감사원 조치를 고려해 올해 최소선발예정인원을 1250명으로 늘린 것이다. 금융위는 올해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금융유관기관, 상장회사, 금융회사 등 비회계법인들을 상대로 회계사 채용수요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를 통해 회계사들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최소선발인원을 1200명 수준으로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회계업계에서는 “실제 채용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수요조사만으로 회계사 선발인원을 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으며, 금융위는 지난해 수요조사와 비교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참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연도별 최소선발예정인원을 보면 1995년 280명에서 1998년 500명으로 늘었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1000명 증가 후 유지됐다. 하지만 2007년 회계사 과잉공급으로 신입 회계사에 대한 실무수습이 불가능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정원은 750명으로 줄었다. 이후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850명이 유지됐다. 2018년 회계개혁 단행으로 회계사 수요가 늘면서 2019년 1000명으로 늘었고,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1100명이 유지됐다. 다만 실제 선발인원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1172명, 1237명으로 최소선발예정인원 보다 더 많이 뽑았다. 감사업무가 늘어나면서 회계법인들의 회계사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영향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둔화 여파로 회계업계의 매출 증가세가 꺾였고 올해는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회계사 수요는 급격히 축소됐다. 금융당국은 비회계법인에서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수요조사에서 답한 만큼 회계사들을 채용할지는 불투명하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의 채용이 이뤄질 경우 미지정 회계사들이 다수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공공기관 등 비회계법인들의 채용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미지정 회계사들이 얼마나 될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시장의 회계전문가 수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함께 수습처를 찾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들을 위한 지원방안도 다각적으로 검토·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실무수습을 진행하는 방안이 당초 추진됐지만, 합격자들의 반대에 따라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전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데 공인회계사회에서 수습을 할 경우 현장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문제점을 고려해 빅4 회계법인에서 ‘인턴제도’를 운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급여수준을 낮춰서 빅4가 실무수습 기관의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수습을 끝내고 등록을 마친 회계사들이 이후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