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와 소셜미디어 ‘X’의 엇갈리는 미래
트럼프 2기에도 “달러 매력 여전” vs “X로부터 엑소더스 일어날 것”
인간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까. 널리 알려진 대로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등 인간은 도구와 언어와 불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최종 승자는 호모 사피엔스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자신들보다 더 튼튼하고 사냥도 잘하고 추위에도 잘 견뎠다는 네안데르탈인까지 이겼을까?
이스라엘 문화・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집단적 상상력에 주목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야기와 신화와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부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종교를 만들고, 화폐를 유통하고, 연락망을 짜는 등 네트워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부족단위를 넘어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거대한 협업을 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누르면서 세상의 지배자로 올라서게 된 이유다.
하라리 “힘의 원천은 네트워크”
하라리는 신간 ‘넥서스’에서 “우리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가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인간은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막대한 힘을 얻지만 그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경계하기도 했다.
하라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나 불가해한 인공지능(AI)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싶지 않으면 먼저 정보가 무엇인지, 정보가 인간 네트워크의 구축을 어떻게 돕는지, 정보가 진실이나 권력과 어떤 관계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늘날 인류의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는 ‘팍스 아메리카나’다. 중국의 부상과 신냉전의 대두로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의 입지는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와 구글・페이스북・X(전 트위터) 등 정보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팍스 아메리카나’ 네트워크는 여전히 막강하다.
미국은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통신망과 금융시스템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세계의 정보 네트워크는 미국이 장악하고, 미국이 운용하고, 미국이 그 사용을 감독하고 있는 셈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다. 가장 무서운 도전자는 중국이다. 중국의 위안화와 사회관계망(SNS) 등은 미국 중심의 네트워크를 흔들고 있다.
중국은 최근 각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늘리고 있다. 러시아와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이 위안화 결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 기반의 SNS는 미국의 안방을 누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은 미국에서 1억70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위협을 느낀 미국은 ‘틱톡 금지’라는 무지막지한 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둘러싼 미중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대중 강경파인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입성한다. 앞으로 4년 동안 미국 질서는 어떻게 돌아갈까? 글로벌 네트워크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트럼프2기에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려는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전략과 중화주의의 ‘대국굴기’가 더 강하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무역과 고립주의를 천명해온 트럼프의 당선으로 일부에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끝났다”라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일관되게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했음을 상기시킨다.
크루그먼 “네트워크는 사회적 합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18일 뉴욕타임스(NYT)에 ‘여전히 매력적인 달러, 그렇지 못한 X(The Dollar Still Has Its Mojo. X, Not So Much)’라는 칼럼을 실었다. 금융과 정보의 ‘네트워크’ 개념으로 트럼프2기를 전망하는 내용이었다.
크루그먼은 먼저 네트워크의 정의를 내린다. 그는 “네트워크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회적 합의를 의미”한다면서 “어떤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엑셀 스프레드시트처럼 모든 사람들이 쓰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도 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트럼프2기 네트워크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사례로 달러와 ‘X’를 들었다. 그는 달러의 지위는 여전히 강고한 반면 트위터는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관찰했다.
크루그먼은 “나는 평생 동안 미국 힘의 원천인 달러가 글로벌 지위를 곧 잃을 거라는 끔찍한 경고를 받으며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달러의 붕괴가 일어난다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낙관했다. 크루그먼은 그런 낙관의 배경으로 “달러가 다른 어떤 잠재적 경쟁자도 제공하지 못하는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ies)’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외부성’이란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다른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크루그먼은 “달러가 지닌 ‘네트워크 외부성’으로 인해 달러 붕괴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달러는 그 시장이 워낙 방대하고,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크루그먼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통화인 위안화로 석유대금을 결제할 수도 있다는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가끔씩 나온다”면서 “일각에서는 이를 달러 종말의 시작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달러의 큰 이점에 비하면 미미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만일 미국정부의 극심한 경제정책 실패로 인플레이션이 치솟는다면? 트럼프와 정치적 이권으로 연결된 기업이 산업 전반의 우위를 점하면서 미국의 법치를 흔든다면? 크루그먼은 이처럼 트럼프2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을 가정한 뒤 “이런 일들 중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달러의 특별한 지위는 사라질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크루그먼은 “달러의 강세는 보편성뿐만 아니라 달러를 발행하는 국가의 안정성의 기반 위에 놓여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달러 붕괴의 시나리오는 몇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정실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은 하지만 달러의 브랜드까지 파괴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못쓰게 될 만큼 망가진 ‘X’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 ‘X’는? 크루그먼은 ‘X’는 달러와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면서 다분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트럼프2기의 실세로 등장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크루그먼은 ‘X’가 머스크의 수중으로 넘어간 이후 소셜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머스크는 2022년 트위터를 440억달러에 인수해 ‘X’로 이름을 바꿨다.
크루그먼은 “이전의 트위터는 진정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던 장소였다”면서 “때로는 잘 아는 분야에서, 때로는 국제관계나 기후정책과 같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서로 배우고 소통하기 위해 트위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크루그먼은 ‘X’의 경영권이 머스크에게 넘어간 이후 그 플랫폼이 얼마나 악화됐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X’에는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봇’과 사람들의 눈길을 자극하는 ‘트롤’,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는 ‘크랭크’, 그리고 극단주의자들까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X’는 이미 “기본적으로 못쓰게 될 만큼(basically unusable)” 망가졌다고 혹평했다. 크루그먼은 조만간 ‘X’로부터 탈출하는 ‘엑소더스(Xodus)’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X’를 대체하는 소셜미디어로 블루스카이를 추천하기도 했다.
다시 하라리로 돌아가자. 하라리는 “네트워크가 막강해질수록 네트워크의 자정장치가 중요해진다”라고 짚었다.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나 도시국가 시대에는 내부의 실수가 있어도 그 피해가 제한적이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네로 같은 미치광이 황제들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인류의 종말을 부르지는 않았다.
하라리는 그러나 “실리콘 시대의 초강대국에 자정 장치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약하다면, 우리 종은 물론 수많은 다른 생명체의 생존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MAGA’를 부르짖는 트럼프는 과연 ‘팍스 아메리카나’ 네트워크에 어떤 변화를 안길까? 트럼프 대응책으로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반도에 사는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제 ‘생존의 기술’이라도 모색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