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예산안 쟁점분석 ⑨ 주먹구구식 의대증원
“국립대 의대 건물 신축사업, 사전 타당성 평가도 안 거쳐”
국회 예결위 “9개 대학 21개 건물 추진 불확실”
사립 의대 지원하느라 비의대 지원 축소 우려
필수의료 ‘공제회’만 운영자금 지원 근거 없어
대규모 의대 증원에 따른 국립대 의대 건물 신축사업이 사전 타당성 평가도 거치지 않아 사업 시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사립대 의대의 경우 대규모 융자를 지원하고 사학기금이 아닌 일반회계에서 지원하는가 하면 소송 지원을 위한 공제회에도 예산을 투입하는 등 다른 직군이나 비(非)의대와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25일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2025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교육부의 의대여건 개선사업은 총 투입비용이 8678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건립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전타당성 평가 등을 거치지 않고 편성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9개 국립대 의대에 총 21개동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계획이다. 이 중 턴키(일괄입찰, 설계+공사비) 방식으로 추진하는 9개 대학의 10개동에 대해서는 총사업비 5011억원의 약 25% 규모인 1269억원을 반영했고 일반(설계 후 시공) 방식으로 추진하는 8개 대학의 11개동의 설계비는 전체의 50% 수준으로 70억원을 편성했다. 리모델링 사업엔 90억원이 배정됐다.
교육부는 “의대증원에 따른 의대인증 기준 미충족을 방지하기 위해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하지만 예결위는 ‘2025년도 예산안 편성 작성 세부지침’에 따른 국립시설 사전타당성평가 등을 거치지 않고 편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업의 효과성과 경제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총사업비가 200억원 이상 500억원 미만인 국립 시설은 사전타당성 평가 대상 사업이다. 예산에 반영하려면 원칙적으로 사업시행 2년 전에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사전타당성평가를 요구해야 한다. 이에 앞서 부처의 사전용역 결과보고서는 필수 제출 사항이다. 이번에 반영된 21개 동 중 18개 동이 사전타당성 평가대상 사업인데 모두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업비 늘어나면 타당성재조사 실시해야 = 게다가 사업비 산출과정도 주먹구구식이었다는 평가다. 국회 예결위는 “의과대학 인증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학생 1인당 평균 공간 면적에 증원규모와 면적당 단가를 곱하여 일률적으로 총사업비를 도출했다”며 “각 대학의 공간 효율성과 부지선정 상황, 고도나 층수 등 여러 사항이 정밀하게 검토되지 못해 향후 설계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향후 설계적정성 검토 결과 또는 사업추진 과정에서 총사업비가 증가하는 경우 타당성재조사를 실시해야 할 가능성과 이로 인해 사업이 지연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총사업비나 국가 재정지원규모가 500억원에 미달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가 사업추진 과정에서 500억원을 넘어가게 되면 타당성 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의대 전임교수 대규모 긴급 증원으로 우수인력 확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교육부는 국립대 의대 전임교수 인원을 2025년 330명, 2026년 400명, 2027년 270명으로 단계적으로 1000명까지 증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국립대 의대 교수 채용 경쟁률이 1.4:1~2:1 가량, 매년 전임교원(전임교수+기금교수) 지원 접수인원이 162~201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330명 채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교육부는 대학의 기금교수, 임상교수 등 우수 역량을 갖춘 의료인력이 신분 안정성이 높은 전임교수로 채용될 수 있어 인력풀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 예결위는 “교육부의 의견대로 임상 분야에서는 우수한 인력풀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초의학 분야의 인력확보는 단기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대 지원에 비의대 상대적 지원 축소 = 사립학교 교육환경개선 자금융자 지원이 사립의대에 치중되고 의대 이외 대학에 대한 일반융자 자금이 줄어들어 의대와 비의대간 형평성 저해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회 예결위는 “교육부는 사립의대 융자수요에 대해서는 100% 지원하고, 의대 외의 융자수요에 대해서는 25%만 지원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며 “올해 사립학교 교육환경개선 자금 융자사업 수요액 1726억원의 40%인 690억원을 편성했다가 갑자기 내년에는 수요액의 25%로 하향하는 것은 의대와 비의대간 형평성 문제와 함께 열악한 사립대학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필수의료분야 의료인 등 특정인에 대한 공제(보험)료 지원을 국가재정으로 집행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국회 예결위는 “당초 보건복지부는 2024년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 당시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필수의료분야 의료인(전문의·전공의)의 부담 완화를 위해 가칭 ‘의료기관안전공제회’를 설립해 이들을 대상으로 책임보험(공제료)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최근 보건복지부는 대표성 등을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단일의 공제회를 설립하도록 의료계와 논의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공제료(보험료)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공제회는 정부가 아닌 의료인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현행법에서는 공제(보험) 사업을 위한 운영비 등의 지원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실제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복지부 산하 비영리법인으로서 공제조합 운영 등과 관련하여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1000억원이 넘는 ‘병원 필수의료 역량 강화 지원’ 사업이 사학진흥기금이 아닌 일반회계에서 지원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2019~2021년 사립대 강사 처우개선 자금 융자에 대한 이자 지원을 위해 8억원 정도가 한시적으로 편성되기는 했지만 이처럼 대규모 재원을 전입 받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이라는 사학의 한정된 분야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