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20년, 새로운 도전과 희망 3

2029년 베트남꿀 무관세…국산꿀 경쟁력은?

2024-11-28 13:00:09 게재

‘45년 양봉업’ 박경제 대표 “살길은 꿀등급제”

‘공인 성분분석’ 등 수출에 필요한 지원 필요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20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59개국을 대상으로 21건의 FTA가 발효되면서 다양한 수입 농산물이 국내에 들어왔다. FTA로 인해 우리 농업분야는 큰 피해를 봤지만 반대 급부로 경쟁력이 강화된 품목도 있다. 내년에는 농업 분야 통상압력이 더 강해질 전망이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내년부터 농업분야에도 상당한 개방 압력이 밀려올 것이다. 한미 FTA 개정 압박도 예상된다. FTA 20년 교훈을 통해 농업분야 미래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스마트농업과 연계한 K-푸드 확장성을 키워내는 일이 시급하다. 내일신문은 고교생 FTA데이터 교육을 통해 FTA가 국내 농업분야에 미치는 연구를 2022년부터 시작했다. 우리 농업이 FTA에 맞서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지 고교생 시각으로 지난 3년간 다양한 과제도 제시했다. 내일신문은 5회에 걸쳐 강력해진 세계 농업 보호주의와 국내 농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아 본다. <편집자주>

지리산 자락에서 꿀 농사를 짓는 박경제(65) ‘지리산 산청 시골농장’ 대표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수입꿀이 무관세로 들어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 양봉산업이 값싼 수입꿀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수입꿀에 맞서 국내산 천연꿀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인된 성분 비교분석과 국가기관의 품질평가 확산이 우선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45년 양봉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한-베트남 FTA체결에 따라 베트남산 수입꿀이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호주와 뉴질랜드의 마누카꿀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도 장벽이다. 28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베트남 꿀 411톤(8월까지)이 수입됐다. 베트남 꿀은 천연꿀이지만 자연생산량이 많아 싼 가격에 대거 수입된다. 66톤 수입된 미국산 꿀이 127만6000달러였지만 베트남산은 6배가 넘는 물량인데도 37만3000달러에 불과한 금액이다. 그만큼 가격이 저렴하다는 뜻이다.

‘지리산 산청 시골농장’에서 운영 중인 양봉장. 사진 산청 시골농장 제공

반면 우리 꿀 수출은 2020년 6톤에서 2021년 5톤, 2022년 4.5톤, 2023년 6.3톤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이같은 꿀 수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베트남 FTA체결에 따라 2029년에는 베트남 꿀이 무관세로 들어온다. 국내 양봉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표는 국산 천연꿀도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특히 알밤나무꽃꿀은 우리나라만 생산하는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수입산 꿀에 대응해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협회든 학계에서 국산 천연꿀의 성분과 수입산의 성분을 분석해 알리는 것과 국산꿀의 등급제를 빨리 확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1979년 지리산 자락에서 양봉을 시작했다. 현재 3단짜리 벌통 120군을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말부터 본사업을 시작한 꿀 등급제에 참여한 후 생산량과 판매량이 모두 늘었다고 한다.

지리산 산청 시골농장 박경제 대표가 봉군에서 꿀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 산청 시골농장 제공

국내 양봉농가는 박 대표처럼 천연꿀을 생산판매하는 농가와 사양꿀을 생산하는 농가로 나뉜다. 사양꿀은 벌에게 설탕을 먹여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그만큼 판매가격이 싸기 때문에 시장에서 판매량도 많다. 현재 국내시장에 판매되는 꿀의 70%는 사양벌꿀이다.

반면 박 대표처럼 천연꿀을 생산하는 농가는 매년 꽃피는 시기와 기후특성에 따라 벌통을 옮겨 양봉을 해야 한다. 박 대표는 지리산에서 잡화꿀과 알밤나무꿀을 생산하고 강원도 홍천 오대산 자락으로 옮겨 피나무꿀을 생산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벌통을 옮기면서 이동하는 비용이 들지만 사양농가는 설탕을 사야하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실상 비용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만 지역을 옮겨다니는 일이 힘들지만 그만큼 질좋은 자연꿀을 생산해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올해 아까시꿀 30드럼, 야생화꿀 8드럼, 밤나무꿀 10드럼, 피나무꿀 4드럼을 생산했다. 생산과 함께 모두 판매돼 재고량이 없는 상황이다. 박 대표가 생산한 꿀은 사양꿀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비싸지만 시장에서 매년 완판되고 있다. 사양꿀의 경우 2.4㎏에 2만5000원이지만 박 대표가 생산한 아까시꿀은 8만원 피나무꿀 10만원, 밤나무꿀은 9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최초로 해외 수출에도 성공했다. 2018년 홍콩으로 처음 꿀 1.2톤을 수출했을 때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국과 폴란드 등으로 수출을 확대했다.

수출 당시 상대국에서 성분 분석표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품질보증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국산꿀의 성분을 정확히 분석한 자료나 이를 공증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이 없었다. 박 대표는 “농협이나 양봉협회에서 품질보증을 했는데 상대국에서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축산물품질평가원의 꿀 등급제 도입으로 수출 절차가 간소화됐다고 한다.

박 대표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꿀 생산량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꿀벌 폐사가 늘어나고 자연환경에 따라 생산량이 들쭉날쭉하면서 생산기반이 붕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밀원수 확대 보급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지리산에 헛개나무를 심어 내년부터 헛개나무꿀을 생산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주변 양봉농가들에게 밀려드는 수입꿀에 대비하려면 조금 힘들더라도 자연꿀 양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특히 축산물품질평가원의 꿀 등급제에 참여해 시장에서 품질로 인정받지 않으면 베트남꿀에 밀려 생산기반이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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