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무허가 공사로 ‘땅꺼짐’…“원상회복해야”
7년 전 당진 부곡공단 땅꺼짐 피해 사건
법원 “국민의 안전을 위한 처분 … 정당”
무허가 전기공급시설 공사를 하다 땅꺼짐 피해를 입힌 한국전력공사에 대해 행정청이 원상회복을 명령한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한전은 원상회복을 할 경우 수백억원대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전력 공급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을 돌리지 못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행정합의1부(김양규 부장판사)는 한국전력공사가 당진시장을 상대로 낸 ‘위법 개발행위(토지형질변경 및 공작물 설치)에 따른 원상회복 명령 통지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한전은 2017년 5월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아산국가산업단지 부곡공단에 들어설 화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전기공급시설(변전소 등) 설치 공사를 추진했다. 산단 입구에서부터 발전소 부지 사이 양쪽에 지하 60m 깊이로 발진·도달 수직구멍(직경 9m) 2개를 굴착한 후 이 두 곳을 잇는 723m 길이 지하 터널을 뚫은 대형 공사였다.
그런데, 도로 점용허가만 받고 개발허가도 없이 무허가로 공사했다.
2018년 시설 한 곳을 완공하고 나머지 공사를 진행하던 2019년 2월 지반침하와 함께 주변 공장 건물이 균열과 파손, 누수 피해를 봤다는 집단민원으로 공사는 중단됐다. 공사가 중단될 당시 도달 수직구멍은 깊이 총 60m 중 35m가, 터널굴착은 길이 총 723m 중 95m가 완료된 상태였다.
당진시는 2023년 5월 조사를 진행한 ‘부곡공단 땅꺼짐 지하조사위원회’가 원인으로 내놓은 ‘한전 공사로 인한 과도한 지하수 유출’이라는 결과를 토대로 한전에 원상회복 하라고 명령했다.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한전은 “산업단지 내 전기공급시설은 개발행위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냈다.
한전은 “도로부지 내 시설은 당진시(송악읍)로부터 도로점용허가를 받았고, 일부는 준공승인까지 받았으나, 당진시는 공사착수 후 5년이 지난 후 원상회복명령을 했다”며 “당진시의 최근 10년간 ‘도로내 공사에 대한 인허가 사례’에서도 개발허가 없이 도로점용 허가만 받아 설치된 시설이 159건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독 한전 시설물에 대해 피해보상민원 등을 이유로 처분한 것은 행정의 형평성을 잃는 것”이라며 “특히 전력공급을 위한 공익사업임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사건 처분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당진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는 발전 관련 사업이 전문인 공공기관으로서 개발허가 등과 관련해 전문지식 및 경험을 갖추고 있음에도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대규모 공사를 했다”며 “행정청에 문의해 보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원고가 주장하는 원상회복 공사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거나 전력공급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공사 진행 도중 땅꺼짐 등의 사고가 발생해 피해 입은 부곡공단 입주업체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계류중인 점에 비춰보면 원고의 불이익이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굴착 공사가 산단부지 밖에서도 진행됐고, 당진시가 개발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전에 공적으로 의견표명을 한 사실이 없다”며 “개발허가와 도로점용허가는 서로 다른 허가이고, 개발허가를 받지 않고 공사를 한 사례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허가없는 개발행위를 계속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불복한 한전은 항소했다.
이에 송근상 당진 부곡공단 한전전력구 비상대책위원장(현대호이스트 대표)은 “무허가 공사현장에서 땅꺼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장을 지나는 ‘수소와 LNG의 폭발사고’ 등 우려 되는 2차 피해를 막을 대책실행이 더욱 중요하다”며 “땅꺼짐 사고가 발생한지 7년이 지나는데도 주민안전을 위한 대책은 뒷전인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은 송 대표 등 5명이 한전·동부건설·동아지질·KG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무소 등 4개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올해 연말 안으로 법원 전문심리위원의 손해감정평가를 받은 후 내년 1월 17일 오후 3시 감정기일을 진행할 예정이다. 원고들은 원상회복 비용이 700억원대를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