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못막는 트럼프 관세, 방법은 여론뿐
미국 대통령에 주어진 무제한 관세권 … 이코노미스트 “미국민과 기업 피해 따른 여론전만 남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상품에 10~20%의 관세를,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60%까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미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이 정책만으로도 소비자물가가 5.1%까지 상승하고 미국 경제성장률이 최대 1.4%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 관세가 대량추방과 같은 다른 정책과 결합되면 인플레이션이 6~9.3%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즉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 중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매쿼리캐피털은 트럼프 취임 이후 중간선거까지 약 15개월 동안 미국 인플레이션이 통제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쿼리는 “트럼프가 예고한 관세는 미국 제조업체에 대한 세금이자 수출업체에 대한 세금”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경제기관들과 금융기관들이 미국에도 막대한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보는 대규모 관세를 트럼프 당선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일 태세다. 그렇다면 이를 막을 법적 제도적 장치는 없는 걸까. 주요 외신들은 ‘사실상 없다’고 분석했다.
의회에 주어진 관세권, 대통령에게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8일 “미 헌법은 의회에 ‘세금 관세 부과금 및 소비세를 부과 및 징수’하고 ‘외국과의 통상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 통과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관세를 인상하거나 인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무역법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 수많은 법적권한을 발동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대통령은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 대통령이 그러한 위협과 관련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경우’ 거의 무제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에 ‘펜타닐 등 마약 밀반입 및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이란 조건을 내걸면서 IEEPA 발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 무역대표부 전 법률고문 워렌 마루야마는 “IEEPA는 긴급권한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절차적 요건만 거치면 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면 취임 첫날 매우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9년 불법이민에 대한 보복으로 모든 멕시코 상품에 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 IEEPA를 처음 발동한 바 있다. 또 다른 주요 선례가 있다. 1971년 미국은 금본위제에서 탈퇴, 사실상 브레턴우즈 체제를 종료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미국의 국제경제적 지위를 강화해야 한다”며 모든 수입품에 10%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법원은 닉슨의 이같은 조치를 지지했다.
조지타운대 법학교수 캐슬린 클라우센은 “대통령이 행정조치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등 헌법적 이의 제기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법원은 국가의 행정화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지만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권한을 발동할 때는 여전히 이를 존중한다.
원칙적으로 보면 의회의 다수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언을 뒤집는 공동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시 이를 다시 뒤집으려면 의원 2/3의 동의가 필요하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시나리오다.
트럼프·바이든 모두 거침없이 휘둘러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법적 수단은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다. 이 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각급 공무원인 무역대표부는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발동하기 전 특정조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하지만 무역대표부가 조치를 취하기 전에 내려야 하는 구체적인 조사 결과는 매우 모호하다.
무역대표부는 외국이 ‘정당하지 않고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하는’ 활동을 하고 있거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이며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발동할 수 있다.
일단 무역대표부가 외국의 행동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그 권한은 매우 광범위하다. 301조는 ‘무역대표부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기간 동안 해당 외국의 상품에 대해 관세 또는 기타 수입 제한을 부과할 수 있으며, 다른 법률조항에도 불구하고 해당 외국의 서비스에 대해 수수료 또는 제한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이 조항에 따라 3700억달러의 중국산 수입품, 75억달러 유럽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바이든정부도 이 권한을 활용해 중국산 철강과 배터리 태양전지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확대했다.
또 다른 법령은 무역확장법 232조다. 이는 상무부장관이 조사를 실시해 ‘외국 상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수량이나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이 권한을 사용해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관세를 부과했다.
보수성향 대법원, 트럼프 제동 안 걸듯
트럼프발 관세에 대한 거센 저항도 예상된다. 트럼프 취임 첫날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생긴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과 함께 ‘USMCA’라는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의 25% 관세 위협이 현실화하면 USMCA 내 분쟁조정절차에 회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미국은 IEEPA를 꺼내들 수 있다.
하버드로스쿨의 마크 우 교수는 “트럼프정부는 USMCA 협정의 국가안보 예외조항을 지적하며 자신들이 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게다가 USMCA는 2026년 의무적인 재검토를 거쳐야 한다. 협정의 기본원칙에 대한 참여국 분쟁이 장기화되면 아예 FTA가 붕괴할 수 있다”고 전했다.
관세로 피해를 볼 미국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온라인매체 ‘복스’는 대법원의 2023년 판결을 거론했다. 바이든정부의 야심찬 정책인 ‘대학 학자금대출 탕감’ 프로그램이 대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사례다.
‘바이든 대 네브래스카주(2023)’ 재판에서 네브래스카주는 “연방정부가 막대한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정책을 시행할 때 법원의 거부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네브래스카주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중요질문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꺼내들었다. 이는 미국 행정법 소송에 적용되는 법령해석 원칙으로, 의회가 정치적 또는 경제적 중요성이 큰 사안을 행정부 기관에 위임하지 않은 것으로 법원이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복스는 “트럼프 관세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절정에 달한 물가폭등을 재연시켜 미국민과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따라서 미 헌법이 의회에 명시적으로 부과한 과세 및 관세 권한을 대통령이 임의대로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질문원칙의 프레임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매체는 “공화당 성향 법관들이 장악한 대법원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트럼프 관세의 현실화 여부는 법적, 제도적 조치보다 시장과 대중들의 반발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자유주의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무역정책센터장 스캇 린시콤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의 절반 이상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된다. 내년 1월 슈퍼볼 포스트시즌이 열리는 상황에서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이들 국가에서 오는 생필품에 25% 관세를 부과할까”라며 “트럼프는 취임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교역상대국들에 양보를 강요하기 위한 협상전술로 관세 위협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는 생필품 물가 폭등에 분노한 자동차제조 노동자와 농부, 소비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수입품을 훨씬 더 비싸게 만들면 트럼프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심은 금방 바닥날 것”이라며 “여론의 법정만이 트럼프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