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비상 “연내 1500원 넘을 수 있어”
탄핵 부결로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 확대
글로벌 IB “한국 경제 신뢰도 하락 위험↑"
탄핵 정국 빨리 끝내야 돌파구 찾을 수 있어
탄핵 부결로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당시 수준인 1500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원화 약세 방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외환 보유액에는 문제가 없는지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대외 경제적 여건이 악화한 가운데 탄핵 국면 장기화로 내년 한국경제 신뢰도 하락 위험이 높아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며 탄핵 정국을 빨리 끝내야만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돌발상황 우려에 환율 고공행진 = 10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6.1원 하락한 1430.9원에 장을 시작했다. 오전 9시 10분 현재 전날 주간 거래 종가 1437원(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4.8원 내린 1,432.2원에 거래됐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개장 전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에서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 대해서는 시장심리 반전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며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이날 환율 상승세를 억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탄핵 정국과 관련한 돌발 상황이 터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전일 주간 거래 종가는 전거래일 보다 17.8원 오른 1437.0원에 거래를 마치고 다음 날 새벽 2시에는 1435.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전일 장중에는 원달러환율이 1438.3원까지 치솟았다.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0월 24일(1439.7원) 이후 약 2년 1개월 만의 최고치다.
원달러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지난달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을 돌파한 이후 1400원대 위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밤 갑작스런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급등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4일 야간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0원 넘게 급등하면서 오전 0시20분 1442원으로 순식간에 치솟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던 2016년 12월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158.5원(12월 8일)에서 1210.5원(12월 28일)으로 약 2주 만에 52원 상승한 바 있다.
문제는 탄핵이 부결된 후 환율이 더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탄핵 가결로 금방 정상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힘을 잃고 탄핵 국면 장기화에 따른 정지척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 우려가 원화 약세를 가져온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성이 완화되려면 탄핵 무산 이후 확대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우선 해소돼야 한다고 봤다. 신한투자증권은 △탄핵 부결 △정부-여당 간 내각 구성 △여야 대치 및 국민 저항 확대시, 원·달러 환율 상단 1480원까지 갈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는 △탄핵 가결 △헌재 판결 및 조기 대선 국면 전환 시나리오에서 제시한 원달러 환율 상단 1450원보다 높다.
◆내년 트럼프 관세 압박 등 역풍 위기 = 전일 글로벌 IB 골드만삭스는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란 리포트를 통해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한다”면서도 “경기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기 둔화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된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노무라증권은 내년 5월까지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정치적 특수 상황 외에도 각종 대외 여건 악화가 원화 값을 짓누르고 있다”며 “특히 내년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 중국 관세 압박이 커질 경우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고 원화도 동반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 약화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다르쉬 신하 아시아 금리·외환 전략 공동책임자는 정치적인 요인도 있지만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 약화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환율 방어 문제 없나 = 치솟는 환율은 기업의 실적과 재무구조에도 타격을 줄 전망이다.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올 9월 말 한국의 비금융기업(기업) 대외채무 합계는 1761억506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날 환율 종가를 적용하면 253조원을 넘어선다.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말에 비해 55억5650만달러 증가했다. 대외채무란 기업이 갚아야 하는 달러·유로화를 비롯한 외화 빚(외화차입금 외화사채 유전스 등)을 뜻한다.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원달러 환율 상승 속도를 다소 완만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환율상승 흐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계속되는 환율 상승에 우려를 나타내며 금융당국의 환율 방어에 주목하고 있다. 환율 급등 상황이 계속되면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 금융그룹 전체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노무라 증권은 한은의 적정 외환보유액 비율이 국제통화기금(IMF) 평균의 93% 수준에 불과해 통화 당국이 원화 약세를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
환율 방어에 쓰이는 한국 외환보유액은 하락세를 거듭해 4000억달러 선에 근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4156억8964만달러) 보다 약 3억달러 줄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2021년 10월 4692억2077만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내다 판 달러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다만 최 부총리는 “정부·한국은행의 시장 대응여력은 충분하다”며 “최근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경제 분야만큼은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환율변동성과 관련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유지하면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10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원달러 환율 1500원대) 갈수도 있지만 정치적 상황에 의해 촉발된 변동성이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아직 유동성 경색이 일어날 정도의 상황은 아니고, 시장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필요하면 언제라도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9일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달러당 1437원대까지 급등할 때 시장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답하지 않았다.
김영숙·백만호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