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현의 한반도 워치
내란사태로 설자리 잃은 외교, 2025년 외교의 해 한국은?
지난주 어이없는 내란사태로 한국 외교는 설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2025년은 전세계적으로 외교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 외교로 머지않아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사활을 건 외교가 대통령 취임 전부터 물밑에서 진행될 것이다. 미중간에는 관세인상의 후속협상에 이어 전략협상이 쉽게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도 커졌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마저 밀어붙이면 한국도 미국의 전방위적이고 다층적 협상 테이블에 초대받게 된다.
그래서 2025년은 국가들의 운명을 가르는 외교교섭이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마침 필자는 지난달 베이징과 워싱턴을 방문해 몇몇 지인들과 다가올 국제정치의 지각변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기에 소개한다.
미국은 변화 중, 중국은 현상유지 치중
대선 직전 들렀던 중국에서는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베이징대학의 한 교수는 바이든정부의 동맹강화 정책이 중국을 옥죄는 것이기에 차라리 무언가 변화가 있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정책은 트럼프가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필자의 견해를 묻기도 했다.
필자는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교훈을 찾아보라고 했다. 즉 소련은 아프간 전쟁으로 해체되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면서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전락했고 급기야 북한에까지 손을 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1979년 이후 전쟁을 하지 않아 오늘날의 중국이 되었으니 전쟁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구실로 삼은 러시아계 주민 문제도 나왔는데 중국에게도 대만주민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하고, 홍콩에 대한 중국의 정책도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라고 했다. 아울러 주석의 10년제 임기가 없어진 것도 아쉽다고 했다.
다소 도발적인 발언임에도 그들의 대응은 차분했다. 중국은 워낙 큰 나라라 단합이 중요하고 지금처럼 엄중한 국제정치 상황에서는 단일 지도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포럼 공식석상에서도 시진핑의 대외관계론인 ‘인류운명공동체’에 대한 찬사 일색이었다. 최근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는 애써 태연한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중국이 미중 전략경쟁에서 참호를 파고 현상유지를 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선 직후 방문한 미국은 사뭇 달랐다. 변화가 모든 것이었다.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워싱턴에서 만난 지인들은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의 각료 인선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했다. 관세인상은 곧 바로 물가인상으로 이어질 것이고 관세장벽의 혜택이 자의적으로 선정된 일부 미국 기업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관세인상뿐 아니라 물량규제까지 도입해 핵심기술 품목의 글로벌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미 흑자가 바이든정부 동안 2배 이상 늘었기에 한국정부가 대응책을 잘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충고도 있었다.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국가안보실 부보좌관으로 발탁된 알렉스 웡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면서도 과연 그가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공화당 외교전문가들이 한미일 정상회담의 유용성에 대해 보고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트럼프의 결정은 미지수라고 한다. 그래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이 커졌음에는 이론이 없었다.
다만 2017년처럼 협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긴장을 고조시키려고 한다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우려했다. 즉 북한이 그간 핵능력을 더 높였고 러시아의 지지도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현 정부는 북한에 대해 강경정책으로 일관해왔기에 미북간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중개자 역할은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전쟁과 외교 혼재, 하지 말아야 할 일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외교정책으로 2025년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 시리아 내전이 엊그제 끝났지만 이스라엘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글로벌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쟁과 외교가 혼재하고 예측이 어려운 국제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한반도에도 전략적 인내가 곧바로 평화의 시간으로 바뀐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탄핵소동으로 외교 동력이 떨어진 상황이니 무엇을 할 것인지 보다 차라리 무엇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도정부 또는 다음정부도 삼가야 할 것을 열거해 본다.
첫째, 급격한 현상변경은 안된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을 과도하게 요구한다고 해서 미군 철수까지 갈 수는 없다. 또한 트럼프가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비용을 청구한다고 해서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해서도 안된다. 이것은 국민적 컨센서스가 필요한 정책 전환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우선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둘째, 한반도 평화를 불안케 하는 정책은 안된다. 우리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상당히 깊이 들어가 있다. 윤 대통령은 작년 7월 우크라이나에서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함께 싸워 나가겠다”고 했고 이후 살상무기 지원가능성을 언급했을 뿐 아니라 북한군의 참전에 대해서도 강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이제 트럼프 외교가 이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마당에 우리가 계속 러시아와 대척점에 서 있을 것인지, 어떻게 우크라이나와 평화에 초점을 맞추어 협력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미 대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간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예방조치를 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만 자유의 북진을 외치면 북한 반발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사실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우리정부가 강력한 보복대응을 하려고 하자 미국은 ‘상황이 고조되면 전쟁은 미국이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정부의 위험한 대응을 만류했다는 이야기가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의 회고록에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정부는 한반도에 위기가 닥치면 어떤 대응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전쟁 가능성을 높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셋째, 세계경제가 예측불가의 어려운 상태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한국외교가 허세를 좇아서는 안된다. 이번에 워싱턴에서 몇몇 한국 인사들이 G7 가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타진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교를 거래로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지지할 수 있겠지만 상당한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G7 멤버십은 그 효용이 이미 줄었지만 일단 가입하게 되면 그 동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어려운 상황과 미국발 관세인상이 몰고 올 여파, 무엇보다도 계엄소동의 파장을 생각하면 G7은 빨리 접어야 한다. 허세외교는 부산엑스포, 글로벌 중추국가,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세일즈 외교, 대외원조를 갑자기 2배 증액한 것 등 벌써 여럿 나왔다.
어이없는 계엄소동은 외교적 자살골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2025년을 앞두고 벌어진 계엄소동은 동맹국의 신뢰를 잃게 만든 외교의 자살골이었다. 우리가 다시 외교무대에 제대로 나가려면 평화적이고 적법한 방법으로 신속하게 사태를 해결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행여나 또 북한을 자극해 정권 지키기를 시도한다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질 것은 물론이고 한국은 ‘외교 없는 2025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