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윤 대통령과 기자들의 '무의미한 동거'

2023-02-20 11:15:37 게재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은 새정부 출범 후 윤석열 대통령과 10개월째 '동거'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수시로 언론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용산 대통령실 1층에 프레스센터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 책임자와 한 건물에서 지내는 일은 불편이 따른다. 보안규정이 청와대 춘추관 때보다 몇 배는 까다로워서다. 그래도 기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문답할 수 있다는 것은 기자에게도, 국민에게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청사 바깥으로 기자실을 옮겨달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자조 섞인 그 말이 이젠 농담 같지 않다.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 중단으로 윤 대통령과 말 섞어본 지 100일이 다 돼 간다. 대통령 출근 풍경은 조잡한 인조식물 투성이 가벽에 막혀 볼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도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로 때웠다.

불편하고 의미 없는 동거는 그만 끝내는 게 어떨까 싶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안타깝지만 도어스테핑에 대한 중간평가는 '실패'다. 도어스테핑은 역대 어느 정권도 시도한 적 없는, 윤 대통령만의 '대표상품'이 될 뻔했다. 처음엔 좌충우돌하던 윤 대통령이 여름 휴가 후 '모두발언'을 통해 메시지를 정제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참모들의 우려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비판언론 기자의 '항의'(대통령실 표현으로는 '소란행위')를 결국 넘어서지 못하고 대화의 문을 닫았다. 책임론을 제기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대통령이 '넉살 좋은' 여의도 정치인 출신이었다면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을지 궁금하다.

둘째, 윤 대통령은 이미 '기자를 건너뛰고' 국민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중이다. 도어스테핑 중단을 전후해 비상경제민생회의 국정과제점검회의 등 여러 회의를 적극적으로 생중계하는가 하면 연말 연초 부처 업무보고도 상당수 방송으로 녹화·송출했다. 회의 마무리 발언은 대변인실이 전문을 그대로 공개토록 지시하는 일도 잦아졌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서라는데 그 대상이 기자는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끝으로, 대통령실이 기자들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민한 정보나 대통령실의 비공식 요청사항이 노출되는 사고라도 벌어지면 '누군가'가 진노했다는 소식이 어김없이 들려오고, 어느 어느 참모가 앞다퉈 기자단을 성토한다는 말이 뒤따른다. 대통령이 끓여주겠다던 '김치찌개'는커녕 눈칫밥만 먹는 신세다.

어느새 '통제대상'으로 취급받고 있는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의 현실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거라면 기자들과 대통령은 옛날처럼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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