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성형 인공지능시대, 누가 디자이너인가

2023-09-05 11:15:04 게재
이인실 특허청장

올해 상반기에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 중 하나는 챗GPT다. 챗GPT가 언어적 표현생성에 특화된 AI라면 이미지생성에 특화된 AI도 있다. 챗GPT에 입력하는 것과 유사하게 원하는 이미지 키워드를 입력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럴듯한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결과물만 보면 검색엔진이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새로운 '합성'된 이미지다. 챗GPT처럼 공개된 이미지 생성형 AI '스테이블 디퓨젼'(stable-diffusion)의 경우 약 50억개에 달하는 이미지를 선행학습했다고 한다.

디자인에도 활용할 수 있을까 싶어 시험 삼아 '의자' '모던한 이미지' '가벼움' '노랑'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를 차례대로 입력한 후 생성버튼을 눌러보았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마치 의자 카탈로그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 있는 디자인들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 바로 합성된 이미지라는 점에서 일견 새로운 디자인이 '창작'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가끔 챗GPT가 거짓을 진짜처럼 답해주는 할루시네이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창의성을 더하는 결과로 여겨지기도 한다.

AI의 창작물, 지식재산권 관점에선 문제

그러나 AI가 디자인한 창작물은 지식재산권 관점에서 볼 때 문제점이 적지 않다. AI를 이용해 '생성'한 의자 디자인을 특허청에 출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디자인등록출원서에 창작자를 '누구'로 기재해야 하는지부터 고민이다. 그렇다고 AI를 창작자로 적는 것은 현 제도상 불가능하다.

디자인보호법 상 디자인은 창작한 '사람'만이 등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최근 법원에서도 특허명세서에 오직 사람만이 발명인으로 기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사람'으로 한정한 바 있다. 이는 디자인 창작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AI를 이용해 큰 노력없이 누구나 쉽게 창작하는 디자인이라면 과연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허청 공보를 통해 공개된 수많은 디자인들이 AI 학습용으로 이용되는 데이터마이닝(TDM)에 대해 권리가 제한될 수 있는지 여부도 논의가 필요하다.

국내외에서 AI를 이용해 만든 결과물에 대한 디자인권 분쟁은 아직 본격화되고 있지는 않다. 이미 특허권에 대해서는 발명인으로 AI를 기재해 권리다툼이 생기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법적 판단도 내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AI규제법에는 AI가 학습한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AI 생성콘텐츠는 AI로 생성했음을 명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우리 특허청도 AI시대 디자인보호법의 청사진을 그려보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로 협의체를 구성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AI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는 물론 AI를 현업에 이용하고 있는 기업가들이 논의과정에 참여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AI시대 디자인보호제도가 중요한 이유

섣부른 규제는 관련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지만 반대로 실행시기를 놓친 제도는 시장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규제와 제도를 만드는 것은 책임이 따르기에 AI가 아닌 오롯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디자이너와 산업계는 물론 디자인을 향유하는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AI시대 디자인보호제도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