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공직선거관리는 의심조차 받아서는 안된다

2023-10-19 11:53:08 게재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선거는 미래 국가권력의 수탁자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묻는 민주주의 최고의 의식이다. 이 신성한 의식은 여타 제의(祭儀)와 달리 화려함 대신에 무결점을 추구한다. 선거의 요체는 투표를 통해 표출되는 국민들의 의사가 정확하게 개표결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의 무결성(electoral integrity)은 선거인명부, 투표, 투표지 보관 및 이송, 개표에 이르는 일련의 선거관리과정에서 관리의 연속성(chain of custody)이 완전하게 확인되는 경우에만 보장된다.

곤혹스럽게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선거관리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의 경우 무려 137건의 선거무효소송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는 관련 의혹들을 부인하며 해당 선거관리에 아무런 결점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대법원 또한 선관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송사건에서 문제된 사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과연 선거관리의 무결성과 관리의 연속성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것인지 근본적 의문이 남는다. 하단에 비례선거 투표지 문양이 겹쳐 인쇄된 지역구 투표지, 상단에 붉은 화살표 문양이 있는 투표지, 위아래로 서로 붙어 있는 2장의 투표지, 좌우 여백이 전혀 없는 투표지 등 비정상적 투표용지들과 투표지들이 왜 투표시는 물론 개표시에도 걸러지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 비록 대법원이 발생 개연성이 있다고 추정했지만, 투표관리관 인영이 일장기 모양으로 뭉개진 투표지 1000여장은 해당 투표관리관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부인함으로써 객관적으로는 정체불명 상태로 남아 있다.

선거관리 무결성 원칙 흔들린 사례 속출

선거소송 또한 선거관리의 무결성을 사후적으로 담보하는 수단으로 미흡했다. 대법원은 6개월의 법정처리기한에도 불구하고 선거소송을 과도하게 지연처리해 공무담임권과 선거권을 침해했다. 그리고 법원은 소송 초기 중앙선관위 서버 등 디지털 증거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관련 의혹들이 투명하게 검증될 기회를 박탈했다.

또한 대법원은 선거무효사유의 심리와 판단은 선출직 공무원들의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들의 법적 정당성은 선거관리의 무결성이 완전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확보되는 점에서 그 타당성은 의문이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 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개표 관리 시스템이 해킹 공격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인 해킹수법만으로도 선관위 내부 시스템에 침투해 통합선거인명부에 유령 유권자를 등록하고, 사전투표용지를 무단 인쇄하며, 심지어는 개표결과까지 조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사전에 서버 및 DB접속 정보 확보 등 내부자 조력 없이는 해킹이 성공하기 어렵고, 특히 투개표과정에서의 참관활동을 통해 조작 시도를 걸러낼 수 있으며, 실물투표지에 의한 개표결과 검증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안타깝지만 위 선거소송 사례를 돌이켜 볼 때 중앙선관위의 해명은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 특히 사전투표용지는 선관위 청인과 사전투표관리관 사인이 모두 전자적 방식으로 인쇄되어 출력되기 때문에 만에 하나 해킹이 이루어진다면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객관적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와 법원 관계 재설정 적극 검토해야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조차도 받아서는 안된다." 로마 대제사장으로 선출된 카이사르는 자신의 아내 폼페이아가 거행한 금남의 제사에 몰래 침입한 청년 클로디우스가 신성모독죄로 고발당한 후 아내와 이혼한 이유를 이렇게 해명했다. 이 유명한 서양 격언처럼 각급 선관위는 국민 신뢰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 선거관리의 편의성과 효율성보다는 무결성과 관리 연속성에 가치를 두고 사전투표제 폐지 등 과감한 제도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사법부 또한 증거보전을 비롯한 선거소송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선거소송에서 재판의 독립에 대해 추호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임 관행을 통해 자매조직처럼 운영되어 온 각급 선관위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