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정의당 부활의 길

2023-11-01 11:52:31 게재
김윤철 경희대 교수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의당이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득표율 1.83%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고 혼란의 와중에 빠졌다. 내년 총선에서 의석을 획득해 원내정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당 지도부가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을 주요 계기로 삼아 재창당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내부의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어 힘을 모으고 있지 못하다. 현 지도부는 사퇴압력을 받고 있을 따름이다.

당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들의 노선도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가령 당 안팎의 거대 양당 비판세력을 규합해 제3지대에 새롭게 정당을 만들자거나, 아예 정의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자는 등의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이념적 지향도 전략도 정책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구심력을 발휘할 리더십 자원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세간의 관심과 기대에서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당 같은 정당, 소위 '진짜' 진보정당이라고 할만한 비주류 정치세력의 존재는 한국 정치에서 그 의미가 무척 크다. 역사적 경험적으로 진보정당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치의 성격이 달라진다. '자산 보유층 위주의 주류정치'에 대한 마찰력을 작동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기 보수와 진보라고 불리는 양대 정당,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사회경제 이념과 정책에서 별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마찰력의 작동 여부가 더욱더 중요하다.

진짜 진보정당 존립할 '사회적 공간' 충분

현재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양당은 모두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의 지속과 저성장이 구조화된 시대에도 불구하고, 또 기후재앙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물질주의와 성장주의에 갇혀 있다. 그것도 재벌대기업 위주의 성장주의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은 상대를 타자화하고 적대감을 부추기며 자신을 세워내는 정략적 용어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이 등장해 쓰이게 된 역사적 시대상황과 관련없이 구사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답지 않은 보수' '진보답지 않은 진보'가 보수와 진보로 불리는 양당의 정체다.

보수라는 이름을 달려면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와 오류 가능성 인정, 물질주의 가치에 대한 비판적 정신 중시와 전통 고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행을 전제로 귀족적 품격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진보라는 이름을 달려면 약자 우선과 희생과 헌신, 탈물질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식과 담론의 추구와 체현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양당에게서는 그런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실 보수든 진보든 간에 정의당같은 비주류 정치세력이 존재할 공간은 충분하다. 당장 원내의석의 대량 확보는 양당 위주의 미디어환경과 양당 친화적 선거제도 때문에 제약이 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을 대표하며 양당정치를 압박할 '사회적 공간'은 충분하다.

문제는 실제 양당 지배의 정치에 대해 마찰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라는 역량인데, 이는 협소한 정치적 공간이 아니라 양당 지배 정치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로 가득한 사회적 공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정의당은 그간의 진보정치노선인 정치세력화(제도정치적 입지의 구축)에 매여 있을 게 아니라 '사회세력화'에 방점을 찍어 이전과 다른 정치를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기후재앙과 불평등 벗어날 노선 표방해야

그래서 이런 저런 당밖의 정치세력과 연합을 모색할 게 아니라 정치 밖의 약자들과 연대를 우선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당명과 조직체계를 포함한 질서를 허물고 약자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연대당'으로 새롭게 태어날 필요가 있다. 또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기후재앙을 가속화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에서 벗어날 노선의 표방, 즉 '탈성장과 사회적 자원의 공유'를 기치로 내걸어야 한다.

생생한 삶의 현장인 지역을 중심으로 그런 실험의 사례들을 창출하며 '대안적 삶의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 진보정치세력의 원내정당 지위 유지는 물론, 그들의 오랜 숙원인 원내교섭단체 확보는 목표가 아니라 그런 실천의 중장기적 결과물로 여겨야 한다. 그게 정의당 부활의 길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후마니타스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