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독일 톺아보기

독일, 지구온난화에 새 직종 '기후대응매니저' 첫 임용

2023-11-16 11:37:48 게재
김택환 경기대 교수, 언론인

"디젤·가솔린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석탄·석유에서 목재·풍력·태양광의 신재생에너지로, 콘크리트·철근 빌딩에서 목조건축·제로빌딩(에너지자급자족)으로, 기온상승을 1.5℃로 제한하는 파리협약 등 …"

제임스 얀젠 등 많은 기후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며 "문 뒤에 거대한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과도한 화석연료(석탄·석유) 사용으로 야기된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최고 과제다.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협정이 이를 담아내고 있다.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인 1.5℃ 아래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195개국이 "2050년까지 배기가스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은 2045년까지 '이산화탄소 제로'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2030년부터 아예 석유 자동차 등록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빅데이터 분석해 기후변화 예측·대응

지구온난화로 독일에서 새 직종이 생겨났다. 과거 서독의 수도였던 본(Bonn) 시청은 지질학을 전공한 '기후대응매니저'(Klimaanpassungsmanager)를 처음 임용했다. 기후변화 빅데이터를 분석해 각 지역의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사전에 대비하는 일을 담당한다. 본 지역도 '3 핫스팟(hotspot)'인 폭염·가뭄·폭우로 인한 홍수·산불 등으로 인명과 자연피해가 잦아지고 있다. 기후전문가들이 경고한 대로 전지구적으로 핫스팟이 빈번해지면서 본 지역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본시는 기후대응매니저를 채용해 개별 지역의 상세한 기후변화 분석을 통해 이에 대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온라인으로 전달하고 있다. 본시의 리아 곡켈 기후대응매니저는 고급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 인터뷰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이들이 과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대응을 담당하는 시 공무원은 혼자지만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후지도'를 만들었고, 이를 온라인으로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수평적 네트워크에 기반해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민들과 전문가들 참여가 중요하다.

필자가 유학한 본시는 또 주차장을 녹지인 도시숲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에서 숲을 가꾸는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숲을 방문해 탐구하고 심신을 단련한다. 또한 지역 대학들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연구개발과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서부 본시뿐만이 아니라 동부 오더-슈프레시 지역에서도 환경공학자를 기후대응매니저에 임명했다. 환경도시로 명성이 있는 프라이부르크, 프리스란트 등 여러 도시들도 뒤따르고 있다. '바텀업(bottom-up)' 형태로 지자체 도시에서 시작한 좋은 정책을 연방정부가 호응해 예산을 확보했다. 독일 환경부는 지난해 2020만유로를 확보해 원하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약 110명의 기후대응매니저 임용을 지원했다. 올해 6500만유로 예산을 확보해 더 많은 지자체들이 기후대응매니저를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정부는 재정만 지원하고, 실행은 지자체가 하는 연방국가 원리가 잘 작동하는 좋은 사례인 셈이다.

기후위기로 독일은 또 후세세대를 위해 숲보호와 개발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미국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이 베를린 근처 그륀하이데에 전기자동차 100만대를 생산하는 기가팩토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공장부지 건설에 따른 '상응조치'로 근처 670헥타르 숲과 초원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함께 자라는 혼효림으로, 이 숲의 이름은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공간'으로 정해졌다. 숲이 산소를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물을 머금어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숲과 나무가 더욱 중요해짐에 따라 독일은 이미 산림전용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숲과 나무 변화를 모니터링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기후대응매니저도 이 데이터를 활용한다. 대한민국도 2025년 산림전용 인공위성 발사를 앞두고 있다.

실용적·효율적 기후위기 대응

독일의 '바텀업'과 '탑다운(top-down)' 행정이 실용적·효율적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하는 배경은 정치시스템 덕분이다. 정파를 뛰어넘어 '더 좋은 사회'라는 국정목표와 '골고루 잘사는' 연방국가 원리가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회를 위해 경쟁하는 연방시스템엔 16개 광역주정부가 있다. 이들 주정부는 인사권·예산권·법률권을 가지고 실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좋은 성과를 거둔 주지사가 우리 대통령 격인 총리에 도전해 당선된다. 전후 9명의 총리들 중 구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제외한 8명 모두가 주지사(시장) 출신들이다. 초보운전사가 아닌 '준비된 총리'로 민주공화국 토대구축, 라인강 기적, 동서데탕트, 평화통일, 유럽선도국가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주지사의 성공을 위해 민생과 현장이 중요하다. 성과를 내야 선택을 받는다.

반면 제왕적 대통령과 적대적 거대양당구조인 우리는 민생보다는 적대적 갈등, 협치보다는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강성극단세력에 의존한 정치로 민생이나 문제 해결에는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초저출산에 최고자살률, 빈부격차, 성장률하락 등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리더들의 선도 역할과 헌신이 없으니 과소비 '호갱'의 나라로 조롱받고 있다. 독일(8300만명)보다 우리(5300만명)가 더 많은 화석연료(디젤·석유) 자동차(벤츠·BMW·아우디)를 구입할 정도다. 전기차로 전환해 가는 글로벌 트렌드와 역행하고 있다.

정책 경쟁과 협치가 절실한 이유

본시가 먼저 기후대응매니저 제도를 채택했고, 노르트라인 웨스트팔렌(NWR) 광역주정부가 받아들였고, 연방정부가 수용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가장 먼저 '자유의날'을 지정해 코로나 규제를 해제한 중도우파 기민당 출신 아르민 라셰트 주지사(NRW)가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선도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기 때문. 우리로 비교하면 광역도지사(시장)가 좋은 실적을 내고 당원·국민에게 선택받아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길이다.

탈핵과 더불어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위기를 맞이한 독일 정치인들은 공공기관은 물론 국민에게 '겨울 난방을 18도에 맞출 것'을 호소하고 있다. 솔선수범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무상이니 퍼주기 경쟁에다가, 한겨울에 히터를 세게 틀면서 문 열고 영업하는 장면을 쉽게 본다.

경쟁과 협치 문화가 발전된 독일은 2023년 국가GDP가 4조4298억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하고, 정쟁으로 지새우는 우리는 1조7092억달러로 세계 10위에서 13위로 추락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다. 정책 경쟁과 협치의 정치개혁이 절실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우·폭염으로 대한민국 역시 올해 피해가 많았다. 경북 예천의 경우 집중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수많은 사상자가, 동해안 지역엔 가뭄과 부주의로 인한 산불이 자주 나 큰 피해가 있었다. 환경전문기자를 지낸 강찬수 박사는 "기상청과 산림청이 일기예보와 산사태에 대응하고 있다"면서 "독일처럼 지자체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도 기후대응매니저 임용이 필요하다. 국토 63%가 산이기 때문에 산림청이 담당부처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림청이 관련예산을 확보하고 지자체들(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과 양해각서(MOU)를 맺어 공동으로 대처하는 방식이다. 국민안전은 국가가 책임질 기본임무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