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칼럼

페르미의 역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2023-11-22 11:52:52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1997년 개봉한 영화 '콘택트'는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무선 통신에 빠져있던 영화 속 어린 주인공 앨리는 우주에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냐고 아빠에게 묻는다. 이 물음에 아빠는 "만약 우주에 우리만 살고 있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거야"라고 말해준다.

이 답변은 지금도 천문학자들이 외계 생명체를 논할 때 자주 인용하는 명대사로 꼽힌다. 사실 우리 은하 안에 별이 몇 개나 있는지 천문학자들도 정확히는 모른다. 대략 천억개에서 4000억개 정도로 어림잡고 있을 뿐이다. 이들 별들 중 얼마나 많은 별들이 태양처럼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영역이다. 어쨌든 우리 은하 안에는 행성도 수 천 억개는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더해 우리 은하처럼 별들이 모여 있는 은하들이 관측 가능한 우주 속에 또 다시 수 천 억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우주 속에는 행성들이 아보가드로 수만큼 있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아보가드로 수는 개로, 6000해(垓)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다.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가 아보가드로 수 만큼 있다면, 대한민국의 면적을 모래로 300미터나 덮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우주 속 행성들 중에, 오로지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믿기 힘든 얘기다.

우주 속 행성들 '아보가드로 수'만큼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는 핵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었다. 1950년 경 여름, 이 연구소를 방문하고 있던 엔리코 페르미는 동료들과 함께 지금은 역사적 명소가 된 '풀러 로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수소폭탄의 개발을 주장하던 에드워드 텔러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광속보다 빠른 비행체, 우주여행, UFO, 외계생명체 등등 여러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마치자, 페르미가 한마디 덧붙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페르미의 질문은 단순했다. 분명 외계 생명체는 엄청나게 많을 것 같은데, 왜 우리는 그들을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냐는 의문이었다. 이 문제를 흔히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이라 부른다. 엄밀히 따지면 궁금증을 유발하는 질문이지, 논리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역설은 아니다. 어쨌든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로 대변되는 이 페르미의 질문은 이제 과학자들을 넘어 모든 이들의 질문이 되었다. 페르미 역설에 대한 가능한 답 중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희귀 지구' 가설이다. 이는 초신성의 폭발, 블랙홀, 천체들 간의 수많은 충돌 등, 우주의 환경이 생명체를 유지하기에는 극도로 열악하여 오로지 지구에만 지적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가설이다. 즉, 생명이 탄생해 세포에서 문명까지 진화할 정도로 충분히 안정적인 기후와 조건을 가진 행성이 존재할 확률은 아보가드로 수의 역수만큼 작고, 그래서 지구와 같은 행성은 이 우주에 유일하다는 주장이다. 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얼마나 존재할지를 추측해보는 공식도 있다. 소위 드래이크 공식이라 불리는 이 식은 전파를 쏠 정도의 문명을 지닌 외계 생명체가 우리 은하계 내에 얼마나 있는지를 추산해 준다. 문제는 이 공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희귀 지구 가설을 지지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조금 더 그럴싸한 가설은 외계 생명체는 실제 많이 존재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가설이다.

먼저 지구를 생각해보자.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난 것은 대략 38억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인간이 전파 망원경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채 안됐다. 그러니 우리가 아주 민감한 전파망원경으로 외계인의 신호를 다 감지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발사한 100년치 데이터 밖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그것도 그들이 멸종하지 않고 때맞춰 전파 문명이 융성해 있었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사실상 있더라도 시공간의 제약으로 못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존재를 알리지 마라"

엉뚱해 보이지만 외계인들이 숨어 있어서 우리가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가설도 있다. 이는 METI(Messaging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예로 이해 할 수 있다. METI는 외계인의 신호를 찾아 나선 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의 반대로,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계생명체가 있을 법한 곳에 전파를 쏘아 그들과 통신을 이뤄내려는 노력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티븐 호킹 박사의 경고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발전된 외계문명이 우리를 찾아와 지구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도 같은 두려움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우주는 참으로 신비한 곳이다. 암흑물질도, 블랙홀과 휘어진 시공간도 다 신비롭다. 하지만 드넓은 우주에 우리들만 살고 있다는 것만큼 신비로운 일이 또 있을까.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