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칼럼

윤석열정부 '돌격 앞으로 외교'의 결과

2023-11-29 11:47:44 게재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학, 전 국립외교원장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아무리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라고 주장해도, 갈수록 잦아지는 해외순방을 "1호 영업사원의 직무"라고 강변해도 이념편향의 진영외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포장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그런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가치 기준에 미달하는 국가를 배제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다.

지난 1년 반 윤석열정부의 외교는 친미 및 친일 일변도였으며, 미국이 압박하고 일본이 부추기는 가운데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적대적으로 대하며 '돌격 앞으로'를 외쳐왔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의 대한민국 외교 위상은 어떤가? 미일이라는 배후를 믿고 '돌격 앞으로' 했는데 우리만 남고 배후는 사라져버린 양상이다. 대만 문제를 놓고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만 같았던 미국은 꾸준히 고위인사를 중국에 보내왔고,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4시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환경 마약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기로도 합의했다.

미중 관계의 복합성과 민감성을 고려하면 한번의 만남으로 전격 전환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상황악화는 막았고, 서로 '적당히 하자'는 정도의 암묵적 동의에 이른 것은 분명하다. 일본의 기시다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대중 수산물 수출금지라는 악재 해결을 위해 시진핑을 만나 1시간 동안 설득했다. 양국의 공통이익을 위해 노력하자면서 2006년 아베와 후진타오가 만나 합의했던 '전략적 호혜 관계'를 재확인했다.

이렇게 미국과 일본은 이념편향의 외눈박이 외교만 하지 않는다. 체제와 가치가 다르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협력의 공간을 모색한다. 그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갈등과 경쟁 와중에도 실리 챙긴 미일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갖지 못했다. 정부와 국내 언론은 가능성이 상당한 것처럼 띄웠지만 애초부터 결과가 뻔히 보였다. 대중 관계를 관리해온 미일과는 달리 한국정부는 회담 성사를 위해 제대로 노력한 적이 없었다. 미일의 꽁무니만 따라가면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에게 숙이고 들어올 것이라는 왜곡된 상황인식이 초래한 결과다.

중국을 견제하는 선봉대 역할을 자임하며 대만 문제로 도발했고, 러시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를 경유하는 방법으로 포탄을 우회 지원했고, 더 나아가 확실한 물증제시도 없이 북한의 대러 포탄 공급을 단정하면서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자극했다.

올해 한국이 개최국인 한중일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연내 개최는 어려워졌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시진핑의 방한 여부도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 한국에 대중 레버리지가 없는 데다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게 만들기는커녕 도리어 중국을 자극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계기로 단절되었던 대화가 복구로 전환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6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분명한 어조로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이 말을 아직도 꺼내지 않는다. 31년 전 한중수교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인정이 근간이었지만,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만을 앵무새처럼 외치며 미국도 반복적으로 확인해주는 '하나의 중국'은 말하지 않는다. 대중 관계를 개선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는 한반도 위기관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미중은 이번 회담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군사 분야의 고위급 대화채널을 복원하고 정상 간에 핫라인 개통에 합의했다. 역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든 간에 우려 사항이 있으면 전화기를 들어 상대방에 걸면 받기로 했다. 아무리 미중의 경쟁과 갈등이 심화한다고 하더라도 충돌로 비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미중은 핫라인 개통 합의했는데 남북은

그러나 미중보다 충돌의 위험이 훨씬 더 큰 한반도 상황을 두고도 윤석열정부는 어떤 위기관리도 하지 않고 있다. 정상 간 핫라인은 물론이고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도 완전 두절이다.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를 단행하자 그동안 공공연하게 말해오던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한국 외교가 한미, 한일, 한미일 연대만 과시하는 가운데 외교적 입지는 줄어들고 국익의 공간은 좁아져 버렸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망나니 칼을 휘두르게 만들고 자신들은 이익을 위해 타협의 외교를 맘껏 펼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목놓아 부르짖는 가치는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가운데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주변 국가로부터 없는 존재처럼 무시당하면서 국익은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아픈 현실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