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석 칼럼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

2023-12-18 12:24:11 게재
조 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로 어려웠던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년이 올해보다 더 어렵다는 경제전망이 대세라는 사실이다. 세계 경제 전반에 대한 전망도 어두운데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도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 러시아 등 주요국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날로 심각성을 더해가는 전지구적인 기후재앙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에도 희망적인 요인보다 불안한 요인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드러난 위기 외에도 내년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이 끝난 후에 곳곳에 감추어져 있던 위기들이 현실로 나타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런 어려움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계는 지나치게 소비를 억제하게 되고, 기업은 투자보다는 현금확보를 우선시하게 될 것이며, 금융은 원활하게 돌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재정의 역할도 정치상황에 따라서 불확실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경제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두려움 이길 용기 갖고 시대정신 맞아야

중세가 끝나고 새로운 인간의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의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메디치 가문은 당대에 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이었고, 2명의 교황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피렌체의 예술가와 학자를 후원해 인문학의 시대를 열었다. 메디치 가문이 주도한 르네상스는 중세의 특징인 종교적 통제와 문화적 획일성을 뛰어넘는 인간 중심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에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바라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를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세계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위기를 벗어난 이후 급변하고 있다. 세계화의 큰 물결이 꺾이고 새로운 블록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자유무역 질서를 대신해 자국 산업 보호가 우선인 시대로 변하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시대정신이 쇠퇴하고 신(新)국가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다가오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추구하는 한국으로서는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마주해야 하는 시점이다. 노령화와 인구감소,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새로운 먹거리 발굴의 지연 등이라는 어려움을 넘어서 인간중심의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그의 책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에서 두려움 없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직원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면 침묵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되고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몰입도는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조직원의 자발적 참여가 활성화된 조직문화, 그리고 모두가 생산적으로 반응하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조직을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면 조직문화는 '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는 CEO가 끊임없이 기업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조직원과 소통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기업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자본주의 초기의 목표 그 이상의 더 넓고 큰 목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에 대한 공감대 아래에서 조직원 상호 간의 긴밀한 소통이 한시도 끊임없이 그리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이 직원들을 단순한 월급쟁이로 취급하고 직원은 회사를 생활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기업은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경영진과 직원 모두가 회사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기업의 모든 임직원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질 때 두려움 없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인간중심의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국가 단위로 시야를 돌리면 국가가 두려움 없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면 '신뢰'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경제와 군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의미다.

절차적 민주주의, 삼권분립 등의 민주적 가치를 꽃 피우게 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바로 나라를 두려움 없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인간중심의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과감한 구조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조 석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