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키신저 외교의 유산과 리더의 인문학

2023-12-20 11:36:16 게재
홍면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월 29일 100세를 일기로 타개했다.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후 하버드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평생 탁월한 국제정치 이론가이며 실천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으로 일할 때에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소련과의 데탕트, 미중관계의 정상화, 베트남전 종전과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의 초석을 놓은 것 등이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 외교 전성기에 펼쳐졌던 그의 현란한 외교를 '신화'처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를 중국을 '괴물'로 키우고, 공산주의를 회생시켜준 '빨갱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이익이나 인권을 짓밟아버린 '범죄자'라는 꼬리표도 그를 따라다닌다. 칠레에서 정권 전복을 사주하고, 파키스탄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유도 내지 방조했다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가 말하듯 키신저는 복잡한 사고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얼굴이 무엇이든 그가 시대가 직면한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미래의 세계질서와 우크라이나전쟁을 비롯한 외교문제에 대한 자문을 아끼지 않고, 기후변화 AI 같은 신기술이 미래세계에 끼칠 영향에 관심을 쏟았던 것은 그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키신저는 역사 속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그가 남긴 질서의 유산 속에서, 그가 고민했던 난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역설이지만 지금은 다시 그의 사상과 책략을 따져묻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특히 미중갈등의 파고를 슬기롭게 타개해 나가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전문가이기도 했던 키신저 읽기는 필수적이다.

역사에서 교훈 찾았던 냉혹한 현실주의자

'냉혈한 뱀, 얼음같이 차디찬 남자.' 키신저를 인터뷰했던 이탈리아 출신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는 그의 인상을 이렇게 적었다. 키신저의 민낯을 제대로 보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냉혹한 현실주의자 키신저는 외교정책에서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국가는 완벽성도 안보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이념'에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십자군적 사고를 경계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의 극적인 제휴는 이런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국 우선주의외교에 맹방의 운명은 흔들렸다. 중국과의 수교과정에서 타이완은 유엔에서 쫓겨나고, 한반도 평화와 주한미군의 존재도 중국과의 지정학적 흥정의 카드가 되었을 뿐이다.

키신저의 곡예사같은 변신을 이해하려면 그가 뛰어난 외교사가였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키신저는 역사야말로 정치적 유추의 원천이며, 국가 정체성을 정의하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사상 존재했던 국제체제의 성격과 부침을 정치하게 분석하고 거기서 미국의 외교전략을 벼려내고자 했다. 그가 냉전기 미국 혼자 힘으로 세계를 경영할 수 없다는 현실을 수용하고, 강대국 균형외교로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도 근대 유럽의 세력변화, 전쟁과 평화의 조건을 통찰한 결과였다. 역사를 천착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그려낸 것이다.

키신저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역사 속에 명멸했던 정치지도자들의 철학과 통치술이었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인 아흔 언저리에서 역대 중국 지도자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담은 '중국 이야기'와 20세기 여섯 정치인의 리더십을 검토한 '헨리 키신저의 리더십'을 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리더십의 역할과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키신저가 철저한 강대국 중심론자였고 그런 시각에서 역사를 보았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역사를 중일중심 구도로 축약하고, 미국의 6.25참전을 일본 방어의 일환으로 보는 등의 왜곡된 주장들이 그 예다.

인문의 힘에 우리 미래 달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뒤에는 미국중심의 역사관이 있다. 중국도 다르지 않다. 역사와 철학의 토대가 부실하면 미중의 강대국 사관, 일본이 강요했던 식민사관 프레임에 투항하는 지식인을 양산하게 된다. 소위 뉴라이트들의 부박한 역사인식은 이런 병증의 하나다. "인문학을 대학원까지 가서 해야 되느냐"는 후보시절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서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신냉전'이란 제국적 담론에 포섭되어 냉전적 이념외교에 몰두하는 비극은 여기서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재앙'을 통해 평화를 이루겠다는 억지는 사회 저변에도 깔려 있다. 한국사의 정신, 한국의 길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없이는 고치기 어려운 고질이다. 어떻게 그 해법을 찾고 만들어 가느냐에 우리 미래가 달려있다. 모두 깊이 고민해야할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홍면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