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칼럼

올해 세계경제의 최대 복병은 '정치 리스크'

2024-01-04 11:21:12 게재
박태견 뷰스앤뉴스 편집국장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새해 첫날인 1일 올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10대 추세를 선정·발표했다. 해마다 해오는 정례행사로 예측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세계 트랜드를 읽는 데 나름 도움이 된다.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먼저 지목한 것은 올해가 역대 최초로 세계인구의 절반이 넘는 42억명이 투표에 참여하는 '선거의 해'라는 사실이다. 1월 대만 총통 선거부터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70여개 중대 선거가 열린다. 우리나라도 4.10 총선으로 윤석열정권의 명운이 갈린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11월 미국대선이다. 트럼프의 재임 여부가 세계정세의 판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앞서고 있으나 결국은 바이든이 신승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의회 난입 지시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트가 결국은 패할 것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은 30%로 낮게 봤다.

이 전망대로라면 '북한 핵보유 인정' 등을 시사해 파장을 일으켰던 '트럼프 리스크'는 해소될 것으로 보여 우리 정부로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을 것이다. 예측이 틀린다면 바이든과 찰떡공조를 해온 윤 대통령에겐 치명적 타격이 될 것이다.

글로벌 금리인하, 반도체 복귀 등은 호재

이코노미스트가 세계적 권위의 경제전문지인 까닭에 올해 세계경제 전망도 눈길을 끈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이 짙다'고 판단했다. 서방 국가들의 경제는 작년에 예상보다 잘 버텼지만 아직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 고금리가 더 오래 더 높게 지속되면 경기침체가 오지 않더라도 기업과 가계가 고통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국이 디플레이션(저성장 저물가)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작년 4분기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수출을 앞세워 점프를 기대하는 우리나라에겐 결코 반갑지 않은 전망이다. 아울러 "중국의 경제성장세가 둔화하고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며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을 제한하면서 '신냉전'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했다. 대만 1월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집권여당이 승리할 경우 중국의 대만 위협 강도가 높아지면서 미중갈등이 격화될 것이란 우려인 셈이다.

이렇듯 새해도 경제 앞길은 작년 못지않게 안개속이다.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니, 기업은 투자를 선뜻 못하고 가계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물론 지난해와 비교할 때 밝은 측면도 많다. 가장 큰 기대요인은 글로벌 금리인하다. 미 연준은 이미 올해 최소한 3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한 상태다. 한국은행도 그 뒤를 따를 게 확실하다. 그러면 고금리로 크게 위축됐던 내수와 부동산경기에도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미 무주택자의 구매력을 크게 넘어선 아파트값을 볼 때 과거와 같은 투기장세로 돌아갈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지만 말이다.

수출에선 '반도체의 복귀'가 최대 호재다. 과거처럼 반도체 경기가 수직급등하긴 힘들겠지만 AI 수요 등에 힘입어 강한 반등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6개월 뒤 경기를 선반영하는 주가가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수로 연일 고공행진을 하는 것도 이런 기대감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호재들을 단숨에 뒤덮을 수 있는 악재는 '이코노미스트'가 10대 추세 중 첫번째로 지적한 선거, 즉 '정치 리스크'다. 트럼프가 미국 대선판을 쥐락펴락하는 데서 볼 수 있듯, 전세계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예외없이 맹목적 팬덤 지지층에 기반한 포퓰리즘적 극단정치가 맹위를 떨친다. 글로벌 저성장과 이민 유입에 따른 고용 불안, 빈부격차 심화, 살인적 물가 폭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AI시대의 핵심인 알고리즘이 '객관적 뉴스'가 아닌 '보고 싶은 뉴스'만 보게 만들어 극단적 팬덤정치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독특한 분석도 있다.

문제는 이같은 극단적 팬덤정치라는 '경제외적 변수'가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이다. 1997년 IMF사태 발생 당시에도 기아차 문제를 대선 때문에 질질 끌다가 외국자본의 불신을 자초, 30대 그룹 중 16개 그룹이 줄줄이 쓰러져 국가부도로 이어진 쓰디쓴 경험이 있다.

선거가 시장에 '과잉 공포' 불러선 안돼

올해도 마찬가지다. 총선을 앞두고 "경제 폭망" "제2의 IMF사태 발발 임박" "대형 건설사도 떼초상" 등 정부 비판세력들의 목소리가 높다. 다분히 선거용 과장 화법이나 시장 입장에서 보면 펄쩍 뛸 일이다. 시장은 흔히 송사리떼에 비유한다. 물이 고요해야 송사리떼가 모여든다. 이런 시장에 돌맹이가 쉼없이 떨어지면 송사리떼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마련이다.

선거는 속성상 본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금도는 있다. 시장에 '과잉 공포'를 불러일으켜선 절대 안된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눈총이 불신을 넘어 혐오 단계로까지 치닫는 핵심요인 중 하나가 이같은 반시장적 정치논리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박태견 뷰스앤뉴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