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서울의 봄'과 고스톱 민주주의론

2024-01-11 11:56:26 게재
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영화 '서울의 봄' 열풍이 새해에도 지속되고 있다. 누적관객 1300만명이면 '괴물'에 이어 역대 10위 기록이다. 흥행몰이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각본과 중량급 연기자들의 호연을 든다. 1000만배우 반열에 오른 정우성이 217차례 무대인사에 개근한 것도 요인일 것이다.

무엇보다 도돌이표 역사에 대한 기시감 때문 아닐까. 돌과 화염병을 들었던 86세대는 회한과 자부심으로,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 흘리며 거리에 나섰던 7080은 역사의 현장에 참여한 기억으로, 최루가스를 피해 도서관에서 법전을 뒤적이던 동세대는 민주화에 빚진 부채감으로 눈시울을 붉혔지 않았을까. MZ세대가 몰린 것은 반복되는 역사의 현실감 때문일 것이다. 비록 10.26과 12.12와 5.18까지 함께 호흡하지 못했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을까. 그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영화관을 나섰을까.

주인공 전두광이란 이름에서 문득 고스톱을 떠올렸다. 필자는 YS문민정부 때 고스톱의 민주화 기여론을 폈다. 고스톱에 민주주의 정신과 민중지향성과 경제민주화의 원관념이 배어 있다고 주장했다.

되짚자면 먼저 삼권분립 민주정신이다. 대체로 모든 경기나 게임은 둘 혹은 두 편으로 나눠 승부를 가린다. 승자와 패자만 있고 비김은 없다. 바둑은 반 집, 축구는 승부차기로 승패를 결정한다. 하지만 고스톱 정신은 견제와 균형이다. 하나가 점수를 내려 하면 다른 둘이 한 편으로 뭉친다. 그러다 다른 하나가 판세를 뒤집으면 나머지 둘이 암묵적으로 당연하게 한 팀이 된다. 당연히 추구하는 결과는 어깨동무 '빅'이다.

삼권분립 민주정신에 민중성까지 함유

오만한 플레이어가 '못 먹어도 고'를 부르면 자칫 '고박'을 쓸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가 점수를 내면 두 배로 뒤집어쓰는 거다. 그러니 "좋아. 빠르게 고!"를 외치기 힘들다. 벼랑에 몰린 플레이어가 캐스팅보트를 쥔 상황이라면 시쳇말로 '쇼단'을 붙일 수도 있다. 포커에서 가진 패를 보이는 쇼우다운(Show down)과 일본어 소단(商談)의 합성의미인 듯하다. 이때 서로 '독박'을 쓰는 위험을 피해 판을 접는다.

마치 솥발 같은 형세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 작동원리인 삼권분립의 원관념 아닌가. 행정권력이 폭주하면 입법부와 사법부가 브레이크를 걸고, 입법권력이 독주하면 행정과 사법이 거부권과 위헌심판 등으로 고삐를 당기는 거다.

만일 행정권력이 입법부까지 장악하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셋이 아니라 둘이 치는 '타짜의 맞고'가 된다. 이는 공정과 상식을 배반하는 '사기 고스톱'이다. 예컨대 국회를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로 만들거나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거부권을 무한 행사하는 경우가 그러지 않을까.

다음, 서민을 중시하는 민중성이다. 과거의 민화투는 신분제 계급사회가 기반이다. 광(光)은 20점, 열끗은 10점, 띠는 5점이다. 피는 아무리 모아도 0점이다. 고스톱은 다르다. 누구나 알듯이 피가 가장 중요하다. 10장이 모여 점수가 된다. 피는 모두 24장이니 최대 15점(쌍피는 제외)이다. 게다가 기본 피를 확보하지 못하면 '피박'을 쓴다. 여기서 피는 민초이자 민중이며 서민이다.

민주적 민중적 고스톱은 3점만 득점하면 승리한다. 게임의 룰은 너그러우면서도 가혹하다. 예컨대 신분제 민화투 시절 잘 나갔던 비광에는 핸디캡을 줬다. 광이 석장이면 3점이지만 그가 포함되면 2점이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이후 청산하지 못한 시대상에 통렬한 일침인 듯하다.

21세기의 대통령이 "민생보다 이념"이라 할 정도로 아직도 이념과잉의 시대를 통과중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어깨 띠에도 일정한 지분을 줬다. 파랗든 빨갛든 까맣든 셋이 모이면 3점을 준 거다. 반면 열끗에 가혹했다. 5장 모여야 1점으로 8장 모두 모아야 겨우 4점이다. 지주보다 미운 마름이나 권세가의 집사쯤으로 여겼을까. 별명도 멍청이로 붙였다.

한편 고스톱엔 나눔과 공존의 경제민주화 개념도 담겼다. 비김을 추구해도 부(富)의 편중은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개평(皆平)을 두었다. 초과이익을 환수해 공평하게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다.

민주화 시대 이후 사양길 들어선 고스톱

그러니 군사독재시절 모였다 하면 고스톱을 치던 시민들도 자연히 민주정신과 민중의식을 자각했을 것이다. 피의 힘, 즉 단결된 시민의 힘이 자유민주주의의 추진력이다. 이들에게 좌절된 '서울의 봄'은 견디기 힘들었을까. 속칭 '전두환 고스톱'을 만들어 쿠데타적 싹쓸이를 경계했다.

박정희 군부독재 때 생겨난 민중 고스톱은 좌절된 서울의 봄을 거쳐 끝내 민주화의 여름을 꽃피우고는 급속히 사양길에 든다. 마치 역사적 소명을 마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고스톱을 40년 세월이 흘러 다시 기억에 소환하게 될 줄이야. 그렇다고 '새'들을 경계하는 고스톱 규칙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지향은 이미 불가역적 상황이니까.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