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칼럼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과 과학한국의 미래

2024-01-24 11:46:26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언제부턴지 우리는 '눈떠보니 선진국'에 살고 있다. 국내총생산으로 따진 한국의 경제규모는 2020년 2021년 연속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2022년 들어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1조7000억달러로 세계 13위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경제대국임에는 변함이 없다. 반도체 무선통신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로 자리매김하면서 국가 경제를 견인해 온 덕분이다.

물론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은 멀다. 미국 GDP는 25조5000억달러로 우리나라의 15배나 된다. 그런데 미국 인구는 3억4000만명으로 우리 인구 5000만명에 비하면 6~7배밖에 많지 않다. 따라서 인구 대비로 따져도 미국의 경제 규모는 우리보다 2배 이상 크다. 미국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2배 크다는 의미다. 우리 국민은 모두 일에 치여 살고 또 천성이 부지런하다. 반면 미국은 우리보다 일도 적게 하고 또 게으른 것 같은데 생산성이 더 높다니 뭔가 이상하다.

이는 미국의 산업을 들여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미국엔 모바일 혁명을 일으킨 애플이 있고, 전기자동차 세계 1위 테슬라와 전자상거래의 절대강자 아마존이 있다. 게다가 다가오는 인공지능과 로봇시대를 이끌어갈 수많은 첨단기업들이 미국에 둥지를 틀고 있다. 모두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다.

미국은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R&D가 매우 강력하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우리 돈으로 250조원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의 연구개발 지출이 큰 편이다. 2023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30조원 정도로 이는 미국의 1/8 수준이다. 우리나라 예산이 미국 대비 1/10인 수준임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연구개발비에 더 큰 예산을 할애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가 GDP 대비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을 전세계가 다 안다.

이제 겨우 시작된 기초과학 연구 지원

이쯤 되면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왜 여태 노벨과학상 하나 없고 또 세계적인 과학적 발견이 없느냐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순수과학에 재능이 없는 것일까?

사실 노벨과학상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총 연구개발 예산의 크고 작음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노벨과학상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딱 3개뿐이다. 그러니 이 세 분야에 지원하는 연구개발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좋은 잣대가 될 것이다. 이 정보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분야별 연구비의 규모로 알 수 있는데 2021년 기준으로 자연과학 생명과학 그리고 수학에 지원한 연구비는 대략 1조원 정도가 된다. 거기에 노벨상을 목표로 탄생한 기초과학원 예산까지 합치면 대략 1조3000억원에 육박한다. 정부 예산 대비 결코 작은 연구비라 할 수 없다.

그럼 우리나라에선 왜 기초과학에서 좋은 결실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사실 원인은 간단하다. 지금과 같은 기초연구비가 지원되기 시작한 것이 몇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과학자들이 성과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노벨 과학상의 예를 보면 한 과학자가 젊은 시절 과학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기까지 반평생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지금은 묵묵히 지원하고 기다릴 때지, 몇년 지원했으니 노벨상 가져와라라고 할 단계는 아닌 것이다.

2024년 미국은 연방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을 4% 넘게 올렸다. 우리나라 돈 270조원에 육박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미항공우주국(NASA) 예산만 14조원이고, 기초과학 지원금도 13조원으로 증액됐다. 아르테미스 계획으로 달에 우주기지를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고,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존의 첨단 연구분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후속세대 이탈 가속시킬 것

반면 우리나라에선 1990년 이래 한번도 줄지 않았던 연구개발 예산이 대거 삭감됐다. 매년 2~3% 정도씩 꾸준히 증가돼 30조에 육박하던 R&D 예산은 2024년에 14.7%가 한꺼번에 삭감돼 26조5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기초연구 예산만큼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 얘기했지만 연구 현장에선 이미 집단연구는 20%, 개인연구는 10%씩 일괄 삭감됐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문제는 연구비의 많은 부분이 비정규직 박사급 연구원과 대학원생의 인건비라는 점이다. 결국 일괄적인 연구비 삭감은 비정규직과 학생 인건비의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학문후속세대의 이탈을 가속시킬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내년부터 국가 연구개발비 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수년이 지나면 2023년도 예산으로 복귀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국가의 연구개발 능력이 원래대로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 상처를 입고 떠나간 젊은 과학자들이 다시 연구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