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조희대 대법원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2024-01-31 11:50:52 게재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헌법 제27조는 재판청구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그리고 특히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해 재판청구권의 하나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최근 대법원이 연이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지만 소송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게 지나 피해자들 대부분이 운명을 달리한 후 내려진 판결들이다. 때문에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곱씹게 된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헌법에 못박은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판사들은 일정 고위직 판사가 되기 전까지는 약 2년마다 대법원장의 '전보' 인사에 따라 전국 법원을 옮겨 다닌다. 3000여명의 판사들이 2년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다음 2년은 지방에 소위 법관 전보인사의 '경향(京鄕)교류의 원칙'에 따라 법원을 옮겨 다닌다.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떤 판사에 의해 소송당사자로 재판을 받든 국민은 그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2년이 되어 다른 법원으로 전보되면 다른 판사가 와서 그 국민의 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새 판사가 다시 처음부터 소송기록을 새로 보고 증거들을 다시 검토해야 해서 재판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약 2년마다 이루어지는 이러한 법관 전보인사제도야말로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적 법관인사제도인 것이다.

2년마다 전보해서는 신속재판 불가능

많은 사람들은 법관인사제도를 일반 국민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한 법원 내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관인사제도야말로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비롯한 재판청구권의 실현을 위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고, 국민들이 무엇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사법제도인 셈이다.

현재 우리 법원의 재판 지체는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법원에 쇄도하는 분쟁사건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사건의 내용도 복잡해지는데 법원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법원에서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사건만 보더라도 전국 법원에서 민사합의부 사건의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2018년에는 평균 9.9개월이 걸렸는데 2022년에는 평균 14개월이 걸렸고, 민사 단독사건은 2018년에는 4.6개월, 2022년에는 5.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2심과 3심도 사건 처리가 해가 갈수록 더더욱 지체되고 있다. 재판이 길어지면 소송당사자인 국민의 소송비용 증가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이 커지고 범죄피해자 구제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임기를 시작한 조희대 새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신속한 재판'을 위한 조치를 강조했다. 그리고 곧 법원행정처는 법원예규 개정을 통해 현재 재판장 2년, 배석 판사 1년인 법원 내의 재판부 교체주기를 각각 3년과 2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기간연장만으로는 재판 지체 해소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리라고 본다.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한 법원에서 최소 4~5년 정도는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어야 하며, 전보도 독일 법관인사제도처럼 그 판사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히려 판사들의 잦은 전보를 경감하기 위해서는 지역 유지들과의 유착으로 인한 공정한 판결 저해의 위험을 이유로 양승태 대법원에서 폐지했던 지역법관제도를 부활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재판 유착 문제는 지역법관에 대한 철저하고 상시적인 감사제도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법관수 대폭 증원이 근본적 해결책

신속한 재판을 이유로 재판에서 충분한 심리를 소홀히 해서도 된다. 헌법 제27조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함께 충실한 심리를 통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속한 재판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법관수의 대폭 증원이다. 법원은 이제껏 법관수 증원에 소극적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법관수 대폭 증원과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은 기존과 다른 입장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