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진화는커녕 발밑으로 번지는 부동산 PF 위기

2024-02-07 00:00:00 게재

“자기 뼈가 아니라 남의 뼈를 깎는 방안”이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위해 애초 내놓았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라고 내놓은 방안을 두고 금융감독원장이 한 말이다. 시공능력 기준 16위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했다. 이른바 ‘꼬리자르기’로 버티려던 태영건설은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 대주주의 책임에 대한 씁쓸한 공분을 남겼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시작된 후 건설업계의 유동성위기가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징후는 찾기 어렵다.

우선 문 닫는 지방 중소형 건설사의 숫자가 여전히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작년 폐업건수는 2347곳으로 10년 래 가장 많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1월 21일까지 이미 225곳이다. 한개 시공사가 여러 사업장에 책임준공이나 보증을 제공하고 있고, 공사비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20년 말이나 2021년 초 착공한 경우 지난해 하반기나 올 상반기에 준공이 몰려 있을 것이기 때문에 중소건설사 도산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 준공 이후 6개월 안에 대출 원리금이 상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점점 강도 더해가는 정부 대응의 의미

다음으로 지난해 3분기까지 PF 문제에 대해 낙관적이거나 미온적이던 금융당국의 태도가 연말 들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정상화를 차질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했고, 9월에도 소위 ‘9월 위기설’에 대해 근거가 없고 상황은 좋아지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9월 위기설의 핵심 요소는 착공전 PF인 브리지론의 만기가 8~9월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당국의 태도가 변화를 보인 모습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며칠 전부터 찾아볼 수 있다. 12월 12일 금융감독원장은 “시장원칙과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웠고,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지명자도 인사청문회를 즈음해 “PF 문제가 첫번째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장까지도 나서서 언급했던 “질서있는 정리”와는 확연히 달라진 입장으로 읽혔다. 그러고는 불쑥 12월 28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신청이 있었고, 지체없이 같은 날 금융당국은 협력업체지원과 시장안정조치를 발표했다. 이미 사전에 조율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서는 1월 25일 금융감독원이 신한캐피탈과 한국투자캐피탈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 농협 수협 신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중앙회 해당 임원들을 불러 모아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 회의’라는 것을 열었다. 여기서는 발언 강도가 한층 올라간다. 금융감독원은 참석한 제2금융권 임원들에게 “지난해 말 기준 당기순이익이 발생한 금융회사는 기본적으로 충당금을 최대한 적립해야 한다”며 “배당이나 성과급으로 사용하는 회사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 충당금을 적립할 경우 일대일 면담을 하겠다고까지 했다.

사업성이 무너져 착공 후 본 PF로 전환되기 어려운 브리지론에 대해서는 결산시 예상손실을 100%로 인식해 충담금을 적립하라는 말도 했다. 2월 들어 금융감독원장은 “100% 손실을 충당하라는 것은 가감없이 시장에서 가격조정을 통해 모든 것을 정리하자는 이야기”라고 그 뜻을 풀어주었다.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 순차적으로 충격을 최소화해 가는 “질서있는 정리”와 “시장에서 가격조정을 통해 모든 것을 정리하자”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들린다. 통상 후자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기업퇴출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읽힌다. 태영건설 한개 문제만 해결하면 될 것으로 보았는데 그런 식으로 조정하기에는 너무 규모와 정도가 크다는 판단을 했다는 뜻인지 시장의 의구심과 불안이 갑자기 커졌다.

이쯤 되면 정부의 낙관적 견해나 정책대응 능력을 믿고 새 사업을 구상하던 시행사나 입주를 앞둔 계약자, 가구업이나 건축용 자재업계 기업과 종사자들까지 뒤통수를 크게 맞은 셈이다. 막연히 금리인하와 부동산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멈춰있던 사업장이나 금융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억지로라도 정부만 믿고 있다 보니 나름 대책을 세울 시기도 놓친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번져갈 수 있다. 그럴수록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악화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정책자산 ‘신뢰’, 더 잃어선 안돼

흔히들 이번 PF발 건설사 부실을 거론하면 2010~2012년 건설사 연쇄도산과 2011년 저축은행사태를 연상하게 된다. 판박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이도 크다. 당시에는 PF부실의 충격이 저축은행에 집중되었다. 지금은 새마을금고부터 신협 보험사, 특히 증권사까지 가릴 것 없이 제2금융권 전반에 비교도 안될 큰 규모로 엮여 있다.

위기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정책자산이다. 더 잃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십몇년 동안 소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냐” 는 국민들의 원성에 제대로 된 답변부터 해야 한다.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