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칼럼

대학 자율전공에서 경영학과 지원이 많은 이유

2024-02-29 13:00:01 게재

융합이라는 화두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5년 전 일이다. 대학마다 각종 융합기술원이 설립되면서 융합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던 때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이란 개념이 2016년에 처음 등장하기까지는 뜸만 들이다 말았다.

4차산업혁명 개념의 핵심에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공지능(AI)이라는 세 단어가 포함되면서 산업 각 분야에서는 그 단어의 의미를 자체적으로 살려보려고 검토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 셋은 소프트웨어(SW)라는 한 단어로 대변 가능한 것들이다. 하드웨어(HW) 중심이었던 3차산업시대를 넘어 SW 중심으로 가자고 선언했던 것이 4차산업혁명의 주제였다.

산업혁명이 몇 차인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후 나중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은 3차산업혁명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들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산업 간 융합이 시대적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이해하려면 산업 분야 전체에서 융합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

산업의 기초는 제조업이다. 제조업에서 즉시 생산 및 오작동률 축소가 최대 관건이다. 그를 위해 공정 자동화는 필수다. 이런 자동화에는 HW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SW로 해결해야 하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AI도 SW의 일종이다. 학문 간 융합을 말할 때 SW만큼 위력을 발휘하는 건 없다.

융합 실천에 경영학 만한 학문 없어

대학 입학 후 1년차 때는 특정 전공을 선택하지 않다가 2년차 들어갈 때 전공을 지원하는 제도를 자유전공이라고 한다. 국내 대학들이 자유전공제도를 실시해온 건 오래 전부터다. 카이스트 서울대 등은 벌써 15년쯤 됐다.

그런데 지원 현황을 보면 최근 경영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울대 경우는 38%가 경제경영 분야를 택했다고 한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카이스트 경우는 경영 편중 현상이 더 심했다. 50% 이상이 그랬다. 그것이 카이스트 학부 과정에서 경영학과를 폐지한 결정적 이유가 됐다. 이공계 중심 국립대학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까닭일까. 여하튼 폐지 이후로 카이스트에서 경영학 분야는 현재 대학원 과정에만 있다.

왜 이런 경영학 편중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혹자는 경영학 전공이 취직이 잘 돼서라고 추정한다. 또 혹자는 법학대학원 지원시 상경계열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혹자는 전산학 등 이공계가 공부하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일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 배경은 딴 곳에 있다. 위 세 가지 분석은 모두 실상을 잘못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지원하는 학생들이 가장 잘 안다. 요즘 학생들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이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시대의 변화에 적응능력이 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융합에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을 강조하고는 있으나 융합 실천에 있어서 경영학을 능가하는 학과는 실제로 없다.

요즘의 경영학과는 빅데이터 처리의 기본인 수학은 물론 전산까지 가르친다. 교과과정이 그만큼 유연하다. 다른 학과들은 경직된 사고방식과 책임소재 불분명으로 무늬만 융합일 뿐이다. 명문대 법학과를 나온 학생이 전산을 공부해보려고 전산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나 중도 탈락한 사례가 다수 있다. 전산학과 교과과정이 그들을 수용할 준비가 덜 돼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영학과에 가면 중도탈락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이 유연하게 트랙별로 잘 설계돼 있다. 이걸 학생들이 모를 리 없다. 오히려 교수들이 비합리적인 교과과정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국내 대학들의 한계다.

선진국은 시대에 맞는 유연한 교과과정 구조를 갖고 있어 우리같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 영국 대학 같은 곳에서도 이런 편중 문제에 예전부터 잘 대처해오고 있다. 우리는 유연성은 물론 확장성에서도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영국에서는 전산학과도 있지만 ‘전산 및 전기전자과’ ‘전산 및 경영학과’ ‘전산 및 수학과’ 식으로 전산 분야를 여러개 트랙(실제로 학과 개념)으로 구분해 학과를 운영한다. 이보다 더 한 자율이 있을까.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세상은 급변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자세와 관습이다.

변하지 않는 건 우리의 자세와 관습

대문호 톨스토이는 과거 행태를 고수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설파한 바 있다. 그는 ‘부활’에서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같은 물이다. 다만 강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고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며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어떤 곳은 차갑고 또 어떤 곳은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류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라는 뜻 아닐까. 지금 우리는 시류에 얼마나 잘 반응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